설설 김이 나는 흰 쌀밥에 어리굴젓 한 개 올려서 먹는 그 맛은 프라이팬에 막 구운 빵에 버터 한조각을 녹여 부친 뒤 먹는 것처럼 혀 끝에 감긴다. 슬쩍 시큼하고 매우면서도 계란 노른자처럼 혓바닥에 끈끈하게 잘 스며드는 그 맛이다.
●간월도로 가자
어리굴젓의 본고장인 충남 서산의 간월도로 떠나보자. 이곳에서는 지난 겨울부터 굴이 제철을 맞았다. 특히나 어리굴젓의 경우 4월 하순까지는 갯내음이 듬뿍 담긴 신선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서양에는 영어 알파벳에 ‘r’이 들어가지 않는 달(5∼8월)에는 생굴을 먹지 않는 게 좋다는 속담도 있다.
비닐 장화를 준비해 오면 갯벌에 들어가 볼 수 있다. 쑥쑥 발이 빠질 때마다 바다냄새가 코끝을 울리며 파고든다. 바닷물과 가까운 곳에 굴 캐는 아주머니들이 몰려 있다. 허리를 거의 끝까지 굽힌 채 꼬챙이를 이용해 굴 껍질을 깨뜨리고 알맹이를 바구니에 담는데 3초도 안 걸린다. 바구니 속에서 미끈미끈하게 빛나는 굴을 보면 초고추장 없이 당장이라도 꿀떡 삼키고 싶은 심정이 든다.
굴뿐만 아니다. 키조개 피조개 등 각종 패류가 발 끝에 차이고, 오리떼나 이름 모를 철새들이 이것을 톡톡 깨 먹는 광경도 쉽게 눈에 띈다.
굴은 서울의 어시장에서 보던 것과 조금 차이가 있다. 검은 빛이 덜하고 좀 더 퉁퉁하다. 간만의 차가 커서 하루의 반은 바다 속에 있고, 반은 육지에 있는 간월도 굴은 특유의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간월도는 서해안고속도로가 뚫린 덕분에 서울 도심에서 자동차로 2시간∼2시간30분이면 닿을 수 있다. 서해대교를 지나 홍성IC에서 빠져 안면도 방면으로 진행하다가 ‘현대건설 AB지구 방조제’쪽으로 오면 넓은 갯벌을 구경할 수 있다.
●어디서 먹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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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도 갯벌가에는 6, 7개의 식당에서 어리굴젓과 굴요리, 생선회를 판다. 서울 사람 입맛에 잘 맞는 곳 중 하나는 ‘오뚜기 횟집’(041-662-2708)이다. 사과 배 당근 등 각종 야채에 초고추장을 넣고 버무린 ‘굴회(2만원)’가 혀끝에 시원하게 스며드는 맛이 일품이다. 자연산 우럭과 광어회(1인분 2만∼4만원)를 먹고, 매운탕을 끓일 때 반찬으로 나온 어리굴젓을 부어 함께 끓여 먹으면 국물 맛이 한결 진해지고 또 시원해진다. 조개 맑은 국을 끓이다가 굴과 라면 사리를 넣고 먹는 맛도 별미다.
영양식인 ‘굴밥’은 ‘큰마을굴밥집’(041-662-2706)이 유명하다. 대추 밤 당근 버섯 호두 은행에 굴과 쌀을 넣고 만든 것이다. 서울에서 먹는 ‘영양돌솥밥’형태로, 뚝배기에 담겨 나오는데 익은 굴의 고소하면서 비릿한 맛이 잘 느껴진다. 굴이 소화기능을 촉진해서인지, 한 그릇 반은 먹어야 배가 찬다. 해초 굴 조개를 넣고 끓인 국도 함께 나온다. 8000원.
‘섬마을 간월도 어리굴젓’ 판매장(041-669-1290∼1)에서는 조미료를 쓰지 않고 버무린 신선한 어리굴젓을 포장해 500g에 9000원, 1㎏에 1만7000원에 판매한다. 택배로 전국에 배달이 가능하며 수수료가 1000∼3000원 정도 붙는다.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어리굴젓의 영양과 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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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학적인 면에서 살펴보았을 때 어리굴젓은 반찬으로 손색이 없다. 특히 어리굴젓의 단백질에는 우리 몸에 좋은 아미노산이 많은데, 우리가 주식으로 하는 쌀에서 가장 부족한 필수 아미노산인 라이신이 다량 함유돼 있으니 쌀밥과 어리굴젓은 궁합이 아주 잘 맞는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어리굴젓의 원재료인 굴은 ‘바다의 우유’로 불린다. 영양소를 고루 갖춰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원기를 북돋워주는 강장식품으로 손꼽혀왔다. 고대 로마에서도 굴을 양식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사랑의 묘약’으로 불리기도 했다는데, 이는 굴에 성기능을 강화시켜 주는 미네랄 성분인 아연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굴에는 비타민 B12와 비타민 B그룹에 속하는 나이아신, 미네랄성분인 구리가 많아 빈혈을 막아주는 기능을 한다. 비타민 A, B1, B2, C와 칼슘, 인, 철분, 요오드, 망간 등의 미네랄 성분이 들어 있어 ‘비타민과 미네랄의 보고’로도 불린다. 한편 굴 속에 든 타우린은 혈중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키고 혈압을 내려주는 작용을 한다.
굴은 젓갈로 숙성됨에 따라 미생물의 발효 작용으로 특유의 감칠맛을 지니게 된다. 굴에 있는 글리코겐 함량은 감소되지만 글리코겐의 분해산물인 유리환원당과 젖산의 함량이 급증해 새콤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특유의 발효미(味)를 낸다. 굴의 단백질 성분이 분해되어 필수 아미노산인 라이신을 비롯해 페닐알라닌, 이소류신의 함량이 크게 늘어난다는 실험결과도 나와 있다. 어리굴젓은 굴에 있는 단백질의 분해작용으로 생굴보다 소화흡수도 더 잘 된다.
계수경 경민대교수·호텔조리과
▼어리굴젓 만들기
어리굴젓을 집에서 맛있게 담가보자. 핵심은 김치 담글 때처럼 굴을 얼마나 잘 발효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충남 서산에서 40여년간 어리굴젓을 담가왔다는 이경자씨(59)에게 들어봤다.
●재료
굴 1㎏, 소금 50g, 고춧가루 3/4컵, 물 적당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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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법
(1)굴을 물에 깨끗이 씻어낸 뒤 체에 받쳐 물기를 제거한다.
(2)씻은 굴에 소금을 뿌려 절인 뒤 10∼18도 정도의 상온에 7일 정도 보관한다.
(3)물을 끓여 식힌 뒤 고춧가루를 풀어 2∼3시간 두었다가 삭힌 굴에 넣고 버무린다.
(4)10∼18도의 상온에서 다시 3일간 보관한다.
●맛있게 먹는 법
굴젓이 익은 후에는 김치냉장고에 보관하면서 먹는 것이 신선하다. 냉장고에 넣어두면 물이 생기므로, 냉동실에 얼렸다가 먹는 편이 낫다. 또 삭힌 굴을 고춧가루에 버무릴 때 생강채 1티스푼, 마늘채와 파채 각 1티스푼, 배 1/4개, 밤 6개, 무 50g, 조밥 1/2컵 중 취향에 맞는 재료를 섞어 익히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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