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블록이나 리벳(금속 못)으로 산수화를 만들어내다니. 전통 회화를 저렇게 재창조할 수도 있구나.”
황인기의 개인전 ‘디지털 산수Ⅱ’가 열리는 서울 종로구 팔판동 갤러리 인(4월5일까지)에 들어서면 이같은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 자유로운 발상이 돋보인다.
1997년 국립현대미술관 선정 ‘올해의 작가’로 뽑혔던 황인기는 한국 회화의 새로운 양식을 창조해가는 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전시엔 ‘디지털 산수’ 연작 회화와 설치작품을 선보인다. 전시작의 특징은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내용)와 표현양식의 독특한 결합에 있다.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동양적 자연의 이미지, 문인화풍의 세계. 그러나 그것을 표현하는 소재는 스테인레스 알루미늄 금속못 레고블럭 실리콘 등 지극히 현대적인 것들이다.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주제와 소재가 묘하게 어울리면서 색다른 미감을 만들어낸다. 차가운 느낌의 소재인데도 완성된 작품을 보면 따스하고 친숙하다.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를 레고블럭을 이용해 새로 만들었다. 작품명은 ‘방(倣) 금강전도’. 이 작품에서 정선의 ‘금강전도’는 무수히 많은 작은 사각형의 도트(dot)로 해체되고 다시 그 도트들이 어울려 새로운 풍광을 보여준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1844년)는 아예 입체로 다시 만들었다. 세한도에 나오는 소나무 있는 집을 합성수지로 입체 제작해 마치 땅 속에서 발굴된 유물처럼 꾸며놓았다, 그 집을 다섯채 늘어놓고는 ‘세한 연립주택’이라고 이름붙였다. 작가의 자유로운 발상과 유머러스한 감각이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합판 위에 크리스탈로 제작한 ‘별빛’, 윤두서의 ‘자화상’을 양각 음각으로 표현해 한 화면에 나란히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해석의 여지를 제공하는 ‘27㎏짜리 윤두서와 33㎏짜리 윤두서’ 등도 흥미로운 작품들. 02-732-4677, 8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