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클로드 페이예 前OECD총장-양수길 前OECD대사 대담

  • 입력 2002년 3월 25일 18시 14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과 철강 고관세 부과조치 이후 한국과 유럽은 외교무대에서 비슷한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이인호·李仁浩) 주최로 25, 26일 서울 매리어트호텔에서 개최되는 제5차 한불 포럼 참석차 방한한 장클로드 페이예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과 양수길(楊秀吉) 전 OECD 주재 한국 대사의 특별 대담을 통해 최근 미국 외교정책에 대한 유럽의 대응 전략, 유럽 경제 회복 전망, 유로화 부상에 따른 세계 경제 재편 등에 대해 알아보았다.》

▽양 전 대사〓부시 대통령의 ‘일방주의’ 외교가 최근 미국의 철강 고관세 부과조치 이후 더욱 강화되고 있다. 유럽은 미국의 고관세 조치에 어떻게 대응할 방침인가.

▽페이예 전 총장〓유럽 국가들은 미국과의 쌍무 협의를 거쳐 철강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으며 자체적인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를 발동해 미국에 보복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은 독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아시아 호주 등 다른 피해 국가들과의 국제 공조를 강화하는 전략을 택해야 한다.

▽양〓세계무역기구(WTO)가 미국에 시정 명령을 내릴 경우 미국이 이에 불복할 만큼 초강수를 두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다만 WTO의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최소한 1∼2년 정도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미 그 사이 당사국들에서 피해가 심각한 수준에 도달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페이예〓세계 경제가 회복의 기로에 선 시점에서 철강 논란이 불거져 나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세계 경제의 3대 축 중에서 미국 경제만이 빠르게 살아나고 있을 뿐 유럽과 일본 경제는 아직 확실한 회복세라고 볼 수 없다. 유럽과 일본은 추가적이고 지속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한데 최근의 회복 기미가 오히려 이들 경제의 구조조정 노력을 약화시킬 위험성이 있다.

▽양〓프랑스는 1998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프랑스가 월드컵을 개최하면서 얻은 유무형의 성과는 무엇인가.

▽페이예〓프랑스는 월드컵을 계기로 사회기간망과 편의시설을 대대적으로 확충했다. 그러나 이 같은 유형의 성과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월드컵이 프랑스 문화의 다양성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한국도 월드컵을 계기로 아직 외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문화를 소개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양〓올 초부터 유럽 12개 국가에서 유로화가 통용되기 시작했다. 유로화 가치는 통용 직후 상승세를 보이다가 최근 다시 떨어지고 있는데 유로화가 미국 달러화에 맞설 만한 힘을 가졌다고 보는가.

▽페이예〓유럽은 40년대부터 단일통화 채택을 준비해 왔던 만큼 유로화의 저력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국제금융계에서 유로화가 달러화에 대적할 만한 영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세금 재정 등의 분야에서 회원국들의 제도적인 협조가 중요하다.

▽양〓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동아시아 지역의 경제협력체 구성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돼왔다. 최근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양국간 자유무역지대 설치 문제가 구체적으로 거론됐다. 동아시아 경제협력체 구성에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는가.

▽페이예〓유럽연합(EU) 결성 당시 룩셈부르크는 리더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경제 규모가 큰 국가라야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인구 40만명의 유럽의 소국 룩셈부르크는 EU 15개 회원국들간의 견제와 균형을 도모하는 ‘중개자’ 역할을 담당했다. 한국이 창의적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면 동아시아 협력체 구성에서 핵심적인 리더로 부상할 수 있다.

▽양〓최근 한국에서는 발전 분야 등에서 공기업 민영화가 추진되고 있으며 이에 따른 노조들의 반발이 격화되고 있다. 프랑스도 강한 공기업 전통을 갖고 있는데 노동시장의 유연성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페이예〓90년대 후반 프랑스 정부는 공기업 민영화에 따른 대량 노동자 해고를 막기 위해 주 35시간 노동제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대기업에서는 그런 대로 잘 지켜졌으나 중소기업으로 가면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켜 올해 대선에서 존폐 논란이 벌어질 전망이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프랑스인들은 정부가 기업의 고용 문제에 주도권을 행사할 경우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자들에 대한 교육이 필수적이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장 클로드 페이예(67)▼

-전 OECD 사무총장(84∼96년)

-프랑스 국립행정대학(ENA) 졸업

-유럽 공동체위원회 부의장,

레이몽 바르 총리 외교자문관,

외교부 재경국장 역임

-현재 기드 로이레트 법률사무소

고문

▼양수길(58)▼

-전 OECD 주재 한국대사

-서울대 공과대학 졸업

-미국 피츠버그대 경제학 석사, 존스홉킨스대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역임

-현재 세계경제연구원 자문위원,

김&장 법률사무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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