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1842년 아편전쟁에서 패배해 강제로 개국(開國)한 것을 놓고 역사가들은 서양의 과학에 중국이 처음 무릎을 꿇은 것이라고 풀이한다. 앞선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제작된 서양의 강력한 무기에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어 일본과 한국이 쇄국의 빗장을 풀고 말았다. 서양이 이 같은 ‘과학혁명’을 이룩한 것은 서구인 특유의 실용주의와 도전정신 덕분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당시 유럽 각 국이 과학 진흥을 위해 발벗고 나섰던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산업혁명을 직접 체험했던 이들 국가는 과학기술이야말로 부국강병(富國强兵)의 지름길로 판단했던 것이다.
▷세상이 바뀌어 정보혁명의 시대에 접어든 오늘날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각 국이 과학기술의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 점에서 우리의 이공계 기피 현상은 국가의 장래와 직결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동아일보 취재팀이 이공계 학생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일반적으로 느끼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공계 선택을 후회한다는 학생과, 고시를 준비한다는 학생들이 상당수를 차지해 이공계의 기반 붕괴를 실감하게 된다.
▷얼마 전 미국의 과학잡지인 사이언스는 한국의 이공대 위기를 소개하면서 그 원인으로 젊은 세대의 가치관 변화와, 외환위기 이후 연구원들의 대량 실직 사태를 지적했다. 젊은 세대의 가치관 변화란 신세대가 힘들고 어려운 일을 기피하는 것과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선호하는 현상을 말한다. 하지만 다른 선진국의 젊은이들도 가치관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면 결국 이들을 과학 분야로 끌어들이는 우리의 과학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다시 역사에서 교훈을 찾을 일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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