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판소리반' 인기…수궁가 한가락에 자신감 쑥쑥

  • 입력 2002년 3월 26일 15시 39분


20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예술진흥회 소속 국악연습실. ‘어린이 판소리반’ 아이들이 개사한 판소리 ‘수궁가’를 제법 의젓하게 부르고 있다.

‘∼날 찾을 이 없건마는/그 누구가 날 찾어/저 멀리 친구들이/술 한잔 먹자고 날 찾나/뒷동산 꾀꼬리가 노래방 가자고 날 찾나’

북 장단을 맞추던 강사 이영태씨(37·국립창극단원)가 구성진 목소리로 “자∼, 고개 세워! 그려야, 소리가 바로 나오지” 하고 말한다. 아이들은 점점 감정이입되는 표정이다.

판소리 등 국악 교실이 학부모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말 서울 예술의 전당 내 국립국악원이 초·중학생을 상대로 무료 겨울방학 청소년 국악문화강좌 수강생 500명을 모집하자 1300여명이 몰렸을 정도.

무형문화재 5호 이수자인 이씨는 93년부터 ‘어린이 판소리반’ 강의를 열성적으로 해왔다. 그는 판소리 교육의 미덕은 무엇보다 “그윽하고 멋들어진 우리 소리의 세계로 이끄는 것”이라고 했다. 교육의 파생 효과도 크다고 말했다.

“판소리는 종합예술이죠. 창(노래) 아니리(대사) 발림(연기) 모두 갖췄습니다. 오페라도 종합예술이긴 하지만 서양인 발성 구조에 맞는 벨칸토 창법을 요구하지요. 판소리를 비롯해 탈춤 사물놀이 같은 국악은 연기자와 관객이 함께 어울리는 ‘한마당’의 성격이 있습니다. 그래서 국악을 잘 익힌 아이들은 무엇보다도 붙임성과 감수성이 좋지요.”

서울 리라초등학교 3학년 이창준군은 디자인 기획을 하는 어머니 이인경씨(43)의 권유로 2년 전부터 ‘어린이 판소리반’에 나오고 있다. 어머니 이씨는 “국악인인 이모의 영향으로 창준이한테도 국악을 권했다”며 “우리 예술에 대한 감수성 자신감 사회성을 기르는 데 효과가 대단하다”고 말했다.

창준군은 ‘춘향가’에 능하다. 지난해 말 ‘어린이 판소리반’ 1년 강의를 정리하는 ‘춘향가’공연을 위해 6개월간 별도 연습을 했다. 처음엔 무대 바닥만 쳐다봤지만 나중엔 객석으로 시선을 주며 창과 발림을 섞는 게 자연스럽게 됐다. 이영태씨는 “가끔 위문공연을 하는데 아이들의 끼를 살리고 무대 공포감을 극복하는 데 그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어린이 판소리반’에는 남매 자매 형제가 함께 나오는 경우가 많다. 한번 교육효과를 체험한 학부모들이 다른 자녀들에게도 강습을 받게 하기 때문이다.

예술진흥회의 ‘어린이 판소리반’은 매년 2월 간단한 오디션을 거쳐 수강생(1년간)을뽑는다(02-2277-3431). 이영태 강사의 홈페이지(YTSORI.co.kr)에는 어린이 수준에 맞춘 국악 자료들과 강의 동영상 등이 풍성하다. 국립국악원의 학기 중 청소년국악강좌 수강생(1주간)은 5월11일 국립국악원으로 찾아온 어린이들 가운데 추첨해서 뽑는다(02-580-3059). 방학중 강의도 있으며 차츰 강의 규모를 늘릴 예정이다. 전북 남원 민속국악원은 방학 중 청소년 국악문화학교(무료) 참가자를 7월중 선착순으로 뽑을 예정(063-620-2331). 학기중에는 학교 단위로 ‘청소년 국악문화학교 탐방’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 '소리의 바다' 공연 국악신동 유태평양군

31일까지 서울 덕수궁 옆 정동극장에서는 ‘국악 신동’ 유태평양군(서울 잠원초등학교 4학년)의 공연 ‘소리의 바다’가 열리고 있다. 매일 잠원초등학교의 친구들이 찾아와 갈채를 보내고 있다.

유군은 국악인인 아버지 유준열씨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국악을 배우게 됐다. 유씨는 “태평양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태교 삼아 국악을 들려줬다”며 “첫 돌 무렵 친척들이 모였는데 태평양이가 냄비 뚜껑을 들고 국악 장단을 척척 맞추는 걸 보고 모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유군은 재능도 타고났지만 즐기면서 연습하는 노력파이기도 하다. 이번 공연을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서울 서초구 양재동 개인 연습실에서 연습해왔다.

또래 친구들이 피아노 미술 태권도 등 방향성 없는 과외에 바쁜 것을 생각하면 일찍부터 재능을 발견해 자기 세계를 열고 있는 것이다.

유군은 어려서부터 무대에 선 때문인지 낯가림이 적다. 그러나 언뜻 봐도 예의 바르고 착하다는 인상이다. 항상 판소리 가락을 흥얼거리고 다닌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번 ‘소리의 바다’ 공연은 국악 가락과 악기에, 서양 가락과 악기도 끌어와 무대의 박진감과 흥취를 높였다.

유군은 “화음 연습이 힘들었다”며 “하지만 매일 큰 박수가 쏟아져 나와 너무 좋다”고 말했다.

정동극장 김영욱 공연운영팀장은 “유군은 첼리스트 장한나,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처럼 어린 나이에 외국에서 명망을 얻은 서양 음악 신동들에 버금가는 존재”라며 “어린이들 사이에서도 국악을 즐기는 흐름이 퍼져가고 있으며 국악은 차츰 해외에서도 지명도를 얻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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