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따라 한국이 일관되게 밀고 나가야 할 원칙은 대북 관계의 주도권 장악과 투명성 확보다. 특히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솔직 담백한 대북 리더십이 필요한 때다.
1980년대 이후부터 북한은 경제성장에서 연평균 -2∼-3%의 후퇴를 거듭해 8·15광복 당시 중공업의 상징이었던 김책제철소 등은 현재 가동 중단 상태다. 영양실조와 부황으로 누렇다 못해 시커멓게 돼버린 북한의 인민을 이제는 ‘주체의 수도’ 평양에서도 무수히 볼 수 있다.
▼대북정책 투명하게 제시해야▼
그래서 인민경제계획이 달성되면 자랑스럽게 그 결과의 발표를 겸해 미래의 최고 정책강령을 채택하려던 조선노동당대회도 1980년 10월에 열린 제6차 당 대회를 마지막으로 열지 않고 있다.
이런 북한의 상황을 고려해 남북 군사대결을 피하고 교류와 평화 통일로 가려는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의 패러다임은 기업, 민간, 정부 원조를 포함해 10억달러에 이르는 경제물량의 제공을 전제로 하고 있다. 대부분 현금, 양곡, 비료 등이다. 그러나 북한 정권에 베푸는 경제원조가 과연 남북군사갈등과 긴장 완화에 얼마나 실질적 기여를 하고 있는지, 그 원조가 북한 민초에게 얼마나 투명하게 전달되고 있는지 회의적이다.
또 한국이 자원해 평양에 대통령 특사를 파견하는 이번 일도 한번 따져볼 일이다. 우리 정부는 특사 파견 수락에 대한 성의 표시로 북한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양곡과 비료를 지원해야 할 것이다. 북한은 평양 시내의 한정된 장소에서 열리는 아리랑 축전에 남한 관광객 유치를 요구하고 돈 안 드는 월드컵 초청에 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김 대통령은 임동원 특사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으로부터 북한 핵무기와 재래식 군사력 문제 해결에 대해 실체에 접근하는 회담결과를 얻어내도록 하는 결단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아무런 투명한 절차없이 막대한 원조만 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국민의 소리에도 귀기울여야 한다.
생전의 김일성은 후계자 김정일에게 승산없는 대규모 전쟁은 정권상실을 재촉하며, 내부붕괴에 직면해서는 인민군대를 틀어쥐는 길밖에 없다고 자신의 경험을 들어 강조해 왔다.
6·25전쟁 당시 중국과 북한의 조중(朝中) 혼성군이 결성됐을 때 전시 국가 통제권은 조중연합군 사령관인 중국 측의 펑더화이(彭德懷)가, 부사령관은 친 중국계로 북한의 내무장관이었던 박일우가 맡았다. 개전 이후 일주일 만에 남한을 석권하겠다는 김일성의 호언이 미군 개입을 자초하자 김일성은 행여 스탈린을 속인 괘씸죄로 시베리아에 강제 유배될까봐 걱정하며 전쟁 내내 소련 대사 겸 군사고문인 라주바예프 중장과 함께 있었다고 한다.
붕괴 위기에 처한 김정일 정권이 믿는 것은 내부 통제용으로는 재래식 인민군 병력이고, 외부용으로는 탈냉전시대의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과 담판해 체제를 보위하는 것이다. 그 바겐 칩이 바로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이다.
▼DJ 솔직한 대북리더십 필요▼
북한은 이 시점에서 한국의 대통령 특사를 만나 한미 정상회담에서 드러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북한관, 대량살상무기 해결 방안 등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관심을 보일 것이다.
이 시점에 김 대통령이 특사를 통해 김 위원장에게 보내는 어젠다는 북한을 총체적으로 살리는 ‘북한 자립형 경제계획’을 공동으로 수립하자는 청사진을 제시하는 한편 핵무기 등 군사부문의 문제 해결에서 한국과 북한이 함께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강력한 대안을 투명하게 제시하는 것이다.
실체있는 대북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북한에 주도적이고도 공세적으로 투명하게 접근하는 통치행위는 차기 대통령에게 인계할 정책이기도 하다.
최평길 연세대 교수·행정학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