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게이트 수사 끝낸 차정일 특별검사

  • 입력 2002년 3월 26일 18시 35분


《지난해 12월11일부터 105일 동안 권력형비리사건인 ‘이용호(李容湖) 게이트’의 실체를 밝혀내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돼온 특별검사팀의 수사가 25일 끝났다. 특검수사 마지막 날 “이제 사라질 때”라고 말했던 차정일(車正一) 특별검사도 일단 일상으로 돌아갔다. ‘역대 특별검사 중 가장 성공한 특검’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대장정(大長征)을 성공적으로 마친 차 특검을 26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자택에서 만나 특검수사를 마친 소회와 수사 과정 등에 관해 들어보았다.》

-이름(正一)에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은데 누가 지어주셨습니까.

“아버님이 지어주셨습니다. 지금까지 이름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검사로서 정의를 위해 한 길로 가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나 봅니다. 이름 덕을 본 것 같습니다(웃음).”

-특검팀에 점수를 매긴다면….

“스스로 어떻게 점수를 매길 수 있나요. 최선을 다했다는 데는 만족합니다.”

-특검팀에서 일한 분들이 친목계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만나기로 했다면서요.

“이렇게 혼연일체가 돼서 일하고 고생한 적이 없었지요. 수사팀 모두 다 잊지 못할 겁니다. 현역시절에도 이렇게 강도 높은 수사를 한 적이 없어요. 가끔 만날 생각입니다.”

-수사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와 가장 보람이 있었던 때는 언제입니까.

“중간수사결과 발표 무렵에 가장 힘들었습니다. 이수동(李守東) 전 아태평화재단 상임이사는 ‘특검이 수사기밀을 누설했다’고 특검수사관들을 고소했고…. 고뇌를 많이 했습니다. 고민하다가 이수동 사건과 관련한 객관적인 사실을 투명하게 밝히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예정에 없던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국민 여러분이 격려 편지와 전화, 떡 성금 등을 보내주셨을 때 가장 보람이 있었습니다. 호의적인 언론의 태도도 많은 도움이 됐고요.”

-신승남(愼承男) 전 검찰총장의 동생 신승환(愼承煥)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뒤 잠이 안 와서 독주를 마셨다고 하던데 평소 술을 좀 드시는지요.

“친정이나 마찬가지인 검찰에 엄청나게 충격을 줄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총장의 거취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었고…. 밖에서 소주와 양주를 섞어 마시고 집에 들어왔습니다. 술은 좋아하는 편입니다.”

-특검에 임명된 뒤 모든 개인 생활을 정리하고 외부와의 연락도 끊겠다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그 동안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들도 만나지 않고 전화통화도 하지 않았습니까.

“사무실에서도 외부 전화를 일절 받지 않았고 집 전화도 ‘부재 중’으로 해놨습니다. 수도승처럼 지냈어요.”

-외환위기 전에 이민을 준비하면서 외화를 많이 갖고 있다가 환율이 급등하는 바람에 재산이 크게 늘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사실입니까.

“환율이 올라서 돈을 벌었다는 것은 낭설입니다. 97년 12월30일 캐나다에 갔다가 98년 10월 말경 돌아왔습니다. 고교 동기로 함께 개업했던 홍석제 변호사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사망한 뒤 충격을 많이 받았죠. 변호사 일도 재미없었고…. 마침 당시 고려대에 다니던 딸이 캐나다 밴쿠버의 한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가게 돼서 딸과 함께 캐나다에 가서 지냈습니다. 인생에 대해 생각도 정리할 겸해서였죠.”

-특검 급여는 물론이고 사재까지 털어 수사비로 내놨다죠. 얼마나 기부했습니까.

“그걸 말할 수는 없고….(웃음) 고시에 합격해서 사회에서 혜택받은 처지에 좀 베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캐나다에서 돌아온 뒤에는 수임료에 관계없이 사건도 많이 맡았습니다.”

-신승환 이형택(李亨澤) 이수동씨 등 거물급들을 수사할 때 어땠습니까. 수사에 잘 협조했나요.

“잘 협조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객관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시인했지만 주관적인 내용까지 시인한 것은 아니죠. 예를 들어 신승환씨의 경우 자신의 활동이 로비활동은 아니라고 했고 이형택씨도 국가기관 로비 부분에 대해서는 부인했습니다.”

-공소 유지에는 자신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구속하고 기소한 것 아니겠습니까.”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차남인 김홍업(金弘業)씨의 측근 김성환(金盛煥)씨의 차명계좌 보도가 나온 직후 청와대까지 가세해 ‘김홍업씨와 무관하다’고 주장했는데 수사 과정에서 압력은 없었습니까.

“전혀 없었습니다.”

-일부에서는 특검이 미국 영주권자인 이수동씨의 외화 밀반출 혐의를 밝혀냈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해외계좌에 대해서는 조사한 적도 없고 전혀 모르는 내용입니다.”

-이수동씨 집에서 압수한 이른바 ‘언론개혁’ ‘정권재창출’ 관련 문건에 대해 공무상 비밀 누설 의혹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문건의 내용을 보면 이것을 작성하고 배포할 만한 국가기관은 국가정보원이나 청와대 등 극히 한정돼 있다고 봅니다. 반면에 이수동씨나 그의 측근들은 문건이 ‘증권가 정보지’라며 폄하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실제로 문건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아 내용도 잘 모르고 안다고 해도 지금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문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잘 될 것 같습니까.

“이수동씨는 수사할 대상이 아니라고 했는데 수사 대상이 될지는 검찰이 판단할 문제입니다.”

-검찰 간부가 이수동씨에게 수사 기밀을 누설했다는 의혹에 대해 특검팀에서는 “이수동씨가 조서로 남겨놓는 것만 반대했지 사실상 누가 누설했는지 특검팀에서 다 얘기했다”는 얘기도 나왔는데 사실입니까. 이씨가 검찰에서는 사실대로 털어놓을 것으로 보십니까.

“전체적으로 그 간부가 누구인지 감을 잡을 수 있는 얘기는 했습니다. 수사 마지막까지 밝혀내려고 했는데 이수동씨가 앰뷸런스에 실려 링거를 꽂고 오는 바람에….”

-수사 막바지 계좌추적 과정에서 수사팀이 “못 볼 것을 봤다”는 말을 했다는데 그게 무슨 뜻입니까.

“글쎄…. 그런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나도 알고 싶습니다.”

-검찰의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검찰이 신뢰를 받으려면 정치검사가 사라져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정치검사는 일부에 불과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정권과 야합하고 서로 청탁을 들어주고 하다 보니까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검찰 인사가 능력에 따라 객관적으로 된다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검사생활을 17년 동안 하셨는데 그만두신 이유가 뭡니까.

“서울지검 부장검사를 하다가 그만뒀습니다. 부장까지는 자기 이름을 걸고 소신대로 처리할 수 있지만 차장검사나 검사장이 되면 관리자 입장이 되고 그렇게 되면 소신대로 할 수 없는 일도 생기고 나도 못하면서 부하들에게 하라고 시켜야 하는 일도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도 커서 교육비 등 경제적인 문제도 있었습니다.”

-이제 공은 검찰로 넘어갔습니다. 이명재(李明載) 검찰총장과는 대학 동기 동창으로 절친한 사이로 알고 있는데요.

“‘당대(當代)의 검사’라고 생각합니다. 치밀하고 자세가 바르고 자기관리 노력도 많이 하죠. 훌륭한 검사라고 생각합니다.”

-이 총장 체제의 검찰이 수사를 잘 할 수 있다고 보는지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치할 생각이 없다고 했는데 확고한 생각입니까.

“그렇습니다. 전혀 생각이 없습니다.”

차 특검은 25일 오후 특검팀 해단식을 한 뒤 저녁에 대한변협 간부들과 식사를 했는데 그 자리에서 변협 회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너무 많은 칭찬을 해줘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특검수사 때문에 중단했던 등산을 다시 시작하겠다며 “등산을 빼놓으면 별다른 재미가 없을 정도로 등산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골프는 싱글 수준이었는데 몇 년 전부터 등산이 좋아 그만뒀다고 했다. 그 밖의 취미는 노래 부르는 것이라고. 애창곡은 ‘마이웨이’. 29일부터는 공소 유지를 위해 새로 마련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사무실에 나갈 계획이다.

그는 특검수사가 한창일 때 외국에 사는 교포에게서 자신을 ‘무공해 검사’라며 격려하는 편지를 받았는데 그때 상당히 뿌듯했다고 말했다. 그 교포의 말처럼 그의 말에는 ‘공해’가 없는 듯했다.

정리〓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車正一 특검은…▼

차정일(車正一) 변호사는 원칙주의자다. 이 때문에 그가 ‘성공한’ 특별검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주변의 평가다. 지난해 11월 청와대 관계자도 ‘원칙을 중시하는 강직한 성품’을 높이 사 그를 특검으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튀지 않는 성품을 가졌다. 앞장서서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스타일이다. 그를 잘 아는 한 후배 검사는 그가 특검으로 임명된 직후 이런 말을 했다.

“검찰을 떠난 지 오래 돼서 본인이 수사를 얼마나 잘 할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팀을 잘 꾸려 나갈 것이다. 아랫사람들이 마음놓고 수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것이다. 또 타고난 성실함으로 팀원들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학구적인 면도 있어 90년 변호사 개업을 하자마자 세법(稅法)에 관한 책을 썼다.

4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온 서울 토박이다. 이명재(李明載) 검찰총장과는 서울대 법대 동기.

67년 8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부산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77년 서울지검 검사를 거쳐 80년 수원지검 여주지청장, 85년 대검 중수부 4과장을 지냈다. 중수부 과장은 능력을 인정받아야만 갈 수 있는 자리다.

그는 87년 서울지검 북부지청 특수부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89년 서울지검 공판부장을 끝으로 검사 생활을 접었다. 당시 동료 검사들은 사시 동기들 가운데 앞서 나가던 사람이 검찰을 떠난다고 해서 “아깝다”는 말들을 많이 했다고 한다.

가족은 부인 유옥순씨(57)와 1남1녀가 있다. 스스로 공처가라고 할 정도로 아내 사랑이 남다르다. 그는 25일 특검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이제 그동안 나를 위해 모든 사생활을 빼앗긴 사랑하는 아내에게 돌아가려 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인터뷰〓權順澤 사회 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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