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경민/FX사업 투명하게 하라

  • 입력 2002년 3월 28일 17시 42분


5조원이라는 거액의 국민 세금을 쏟아 붓는 차세대 전투기(FX)사업의 기종이 미 보잉사의 F15K로 사실상 결정됐다. 한국의 FX사업에 참여해 경합을 벌인 미국의 F15K, 프랑스의 라팔, 러시아의 수호이 35, 유럽의 유러파이터 등 4개 기종에 대한 종합평가 결과 F15K와 라팔이 오차 범위 3% 이내에 들게 되어 2단계 평가를 실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제2단계 평가란 한미 동맹관계 등 정책적 요소가 결정적인 고려사항이기 때문에 F15K가 사실상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시민단체들과 네티즌들이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정책당국은 이러한 상황을 ‘괜히 공개해서 골치만 아프게 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 이처럼 반발이 큰 지 그 이유를 직시해야 한다.

▼레이더 등 첨단기능 설계 한계▼

문제가 되는 상황을 점검해 보자. 첫째, 국방부 측은 미국의 F15K가 오래 전에 개발되어 낡은 비행기라는 국민의 인식이 곤혹스럽다는 설명이다. 국방부 측은 한국에 제공될 F15K는 1974년에 개발된 오래된 비행기가 아니고 1988년에 개발된 신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F15K에 대해 우려하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이 기종이 고물 비행기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F15K 전투기가 성능을 배가한 전투기라고 해도 현대전에서 요구되는 최첨단 레이더, 스텔스 기능 등을 첨가하는 것은 설계상의 문제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1992년 일본 항공자위대의 주력 전투기인 F15를 업그레이드 중인 나고야의 미쓰비시 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당시 공장 관계자는 F15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하면서 상대방 레이더의 추적을 피하는 스텔스 기능을 가미하고 있었는데 기종 자체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이 작업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토로했다. 그 공장 입구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주력 전투기였던 ‘제로’ 전투기가 전시되어 있었다. 공장 관계자는 이 전투기의 기동성이 여타 전투기에 비교가 안될 정도로 뛰어났던 것은 그 당시로는 상상도 하기 힘든 발상으로 꼬리 부분에 섬유소재를 사용하여 기체를 가볍게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제로 전투기에 대한 향수가 있었던지 일본은 차세대 전투기인 F2 전투기의 주 날개를 탄소섬유수지로 만들어 기체를 가볍게 하는 세계적인 기술을 탄생시키고 있다.

둘째, F15K에 대한 불만은 반미감정이 아니다. 2002솔트레이크시티동계올림픽경기대회에서 불거진 김동성 선수에 대한 판정 시비로 인한 불만이 반미감정으로 이어져 FX사업 기종이 미국산 전투기로 결정되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인데 이는 잘못된 판단이며 객관적인 시각이 아니다. 우리 국민은 미군을 한국 땅에 주둔시키고 있는 만큼 그 무엇보다도 한미 관계가 중요하다고 본다는 사실은 여러가지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우리 국민은 대체로 미국산 무기를 도입하는 데 크게 반발해본 적이 없다.

국민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은 다른 나라들은 첨단기술이 가미된 새로운 제품을 구입하는데 우리는 일본이 몇십 년 간 사용하고 퇴역 준비를 하는 F15를 굳이 서둘러 구입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한국은 앞으로도 해군의 이지스(Aegis)체계, 조기경보기, 미사일 방어체제, 공격용 헬리콥터 등을 수도 없이 도입해야 하고, 그 도입선으로는 대개 미국이 유력시되고 있다. 그런데도 FX사업에서 상식에 맞지 않는 일을 벌이면서 굳이 미국산 무기를 사주어야 하는가 의아해 하고 있는 것이다.

▼항공산업 육성에도 도움 적어▼

셋째, 우리나라 항공산업 육성에 가장 큰 도움을 줄 기종이 어떤 기종인가를 충실하게 따져 보았느냐는 점이다. 항공우주산업은 21세기를 주도해야 할 제조업 중 하나인데 우리 항공우주산업은 매년 20억달러의 적자를 보고 있다. 패전 후 7년 동안 항공산업이 초토화되었던 일본의 항공업계가 보잉 767에는 13%, 777에는 21%의 생산 참여를 보이며 설계 단계부터 공동작업을 하게 된 배경에는 FX 사업을 통한 기술 축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물론 국방부가 율곡사업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은 것과는 달리 이례적으로 FX사업의 선정 과정을 국민에게 공개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그것으로 선정 과정의 모든 의문이 풀리는 것은 아니다. 이제 남은 일은 국민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하는 일이다.

김경민 한양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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