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형남/메가와티와 김정일

  • 입력 2002년 3월 28일 18시 23분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어제부터 북한을 방문하고 있다. 북한 방문뿐이라면 특별한 뉴스가 아니지만 그가 평양에 이어 곧바로 서울을 방문하기 때문에 관심이 쏠린다. 인도네시아 언론에 따르면 메가와티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과 미국 측의 친서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전달할 예정이라고 한다. 메가와티 대통령이 지난해 김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을 ‘형제지간’으로 만나 한반도의 화해와 협력에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으니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대를 이어 지속되고 있는 인도네시아와 북한 지도자의 친분 관계도 이번 방문의 의미를 더한다.

▷1965년 4월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김일성 북한 주석을 환영하는 공항 영접행사에서 기품 있는 옷차림의 여대생이 커다란 꽃다발을 김 주석의 품에 안겨 눈길을 끌었다. 여대생은 대통령궁에서 열린 리셉션에서는 김 주석을 위해 우아한 몸짓으로 인도네시아 전통춤을 추었다. 그 여대생이 바로 당시 인도네시아 대통령이던 수카르노의 맏딸 메가와티였다. 대통령의 딸이 영접행사 주역으로 나설 정도로 양국 지도자의 관계는 각별했다. 수카르노가 한 해 앞서 북한을 방문했고 김 주석은 답방 스케줄을 수카르노가 주도해 성사된 반둥회의 10주년에 맞추었다.

▷김 주석의 인도네시아 방문은 북한에는 역사적인 것이었다. 김 주석은 알리 아르함 사회과학원에서 연설하면서 ‘사상에서의 주체, 정치에서의 자주, 경제에서의 자립, 국방에서의 자위’라는 이른바 주체사상의 4대 원칙을 천명했다. 인도네시아 국립대학에서는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그것이 김 주석이 얻은 최초의 학위였다. 그가 보로르 식물원에서 수카르노로부터 선물받은 난과에 속하는 붉은 꽃은 나중에 ‘김일성화’로 명명돼 북한 주민이 떠받들어야 하는 우상화(花)가 되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당시 당 조직지도부 지도원 자격으로 아버지를 수행해 다섯살 아래인 메가와티를 만났다. 집권 과정은 다르지만 대를 이어 최고지도자가 된 두 사람. 선대(先代)의 각별한 우의까지 기억하고 있을 테니 두 사람의 만남은 통상적인 정상회담과는 사뭇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이 한반도 상황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그 내용이 우리 정부에 소상히 전달되었으면 한다. 흔치 않은 외국 정상의 ‘남북한 연쇄 방문 외교’에 거는 기대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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