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동양을 사랑했던 세계화 1세대 '마테오 리치'

  • 입력 2002년 3월 29일 17시 19분


마테오 리치 초상화
마테오 리치 초상화
마테오 리치/히라카와 스케히로지음 노영희옮김/928쪽 3만6000원 동아시아

이 책은 천주교를 동양에 전한 서양 최초의 선교사 마테오 리치(1552∼1610)의 전기다. 그러나 마테오 리치는 단순히 서구 문명을 동양에 전한 ‘메신저’나 선교사가 아니었다. 동서 문명을 융합시킨, 요즘말로 하면 세계화의 1세대였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영국을 지배하고 있었고 멕시코와 페루를 정복한 스페인 사람들이 남아메리카 황금을 약탈하고 있었을 때였다. 지리상의 발견은 서구 이외의 세계, 즉 미개하고 야만적인 새로운 땅에 대한 착취 역사의 시작이었다.

그들이 가는 길에는 언제나 선교사가 함께 했다. 서유럽 팽창주의의 양대 무기는 군대로 상징되는 총칼과 함께 선교사가 대표하는 기독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길을 타고 온 마테오 리치는 당시 지배적이었던 서양 우월주의적 시각으로 동양을 보지 않았다.

신대륙에 갔던 선교사들이 인디언을 인간의 범주에 넣을 것인지, 동물의 범주에 넣을 것인 지를 갈등하고 있을 때 그는 중국 사람들을 원시 미개인이기 때문에 기독교로 개종시켜야만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서구 기독교 사회와 ‘다만 다를 뿐’인 문명인으로 본다.

중국식 이름 리마두(利瑪竇)로 알려진 이탈리아 출신의 이 예수회 소속 선교사는 선교사이기에 앞서 인문학, 어학, 천문, 지리, 수학, 과학, 미술에 걸친 광범위한 소양을 갖춘 인문학자였다. 그는 중국에서 선교사복 대신 유생(儒生)의 복장을 입었다. 중국어와 한문을 배우고 공자와 사서삼경도 공부한다.

그렇다고 그가 기독교를 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선교사의 본분에 충실하면서 기독교를 중국인의 가치와 관습에 맞추려 노력했다. 기독교 교리를 한문으로 풀이한 ‘천주실의’(天主實義)같은 책은 그 결과물이다. 사서(四書)를 라틴어도 옮기기도 했으며 당시 명나라 학자인 서광계(徐光啓)에게는 수학을 가르쳐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본’을 번역하게 했다.

‘여지산해전도(輿地山海全圖)’(1602) ‘산해여지전도’(産海輿地全圖)‘(1600)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1602)등 각종 지도와 천지의(天地儀) 지구의(地球儀) 상한의(象限儀) 등 천문기구도 만든다. 우리가 지금도 쓰는 ‘천주(天主)’‘아세아(亞細亞)’‘구라파(歐羅巴)’등 서양 언어의 한자 표기도 그가 만든 것이다.

마테오 리치가 그린 '곤여만국전도'

그의 동양에 대한 사랑과 이해는 동료들과 예수회 자체내에서는 이단적 행동이었다. 종교교리까지 침해하는 돌출행동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의 행동은 예수회 존폐 문제로까지 치달았었다. 마테오 리치의 업적이 후일 재평가 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자신이 갖고 있는 벽을 허물면서 그 댓가로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았지만 그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과 살육을 ‘화해’와 ‘문화 융합’으로 바꾼 사람이다.

900여쪽이 넘는 방대한 이 책에서 저자인 히라카와 교수는 “마테오 리치야말로 인간정신의 무한대를 꿈꾸었던 최후의 르네상스”이라고 말한다.

7개 국어에 능통하다는 저자는 1권을 낸 지(1969년) 30년만에 2,3권을 냈다고 한다.

1권을 내면서 마테오 리치에 빠져 30여년동안 수차례 북경을 오가며 자료 수집을 하고 동경대를 정년퇴임한 뒤에야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그 과정에서 1권을 보았던 독자들의 부음소식이 제일 안타까웠다고 한다. 번역도 꼼꼼해 저자와 번역자의 학문적 성실성을 함께 맛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마테오 리치를 연구 대상으로 하는 저작들은 세계적으로도 그리 많지 않다. 그가 이탈리아어 라틴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등 다양한 언어로 저술을 했고 한문 저작도 많아 방대하고 다양한 언어를 넘나 들면서 종합화 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 예일대 조너선 스펜스 교수가 이 분야에선 최고로 꼽힌다.

마테오리치 전기로는‘마테오리치, 기억의 궁전’(이산·1999) ‘서양에서 온 현자’(분도·1989)’가 국내에 번역돼 있고 서울대 출판부에서 그의 저작인 ‘천주실의’(1999)와 ‘교우론’(2000)을 번역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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