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나무와 나눈 인생-문화-사랑이야기

  • 입력 2002년 3월 29일 17시 56분


개나리 진달래가 도심에도 활짝 피었습니다. 생명이 약동하는 봄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황사가 지나간 하늘은 더 없이 푸릅니다. 이번 주에는 한국 일본 호주의 저자들이 각각 쓴 나무와 관련한 책을 묶어 1면을 꾸며 보았습니다.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세기’는 틈만 나면 거리나 교정의 나무를 세는 한국인 사학자의 눈으로 본 나무 이야기입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나무 한그루에도 그렇게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나무의 마음 나무의 생명’은 여든 평생을 나무와 함께 살아온 일본 노(老)목수 이야기입니다. 나무를 화두로 풀어 내는 삶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의 영성을 확장시켜 줍니다. ‘나무위 나무인생’은 20여년 넘게 나무 꼭대기를 오르내리며 환경과 생태를 고민해 온 호주의 한 여성 생태학자의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욕심으로 병드는 자연에 대한 연민(憐憫)과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모성의 이야기가 감동적입니다. 세 사람이 풀어 내는 나무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자연앞에서 겸허해지는 사람의 모습이 보입니다. 독자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세기/강판권 지음/256쪽 1만3000원 지성사

저는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사학자입니다. 제게는 특별한 습관이 있습니다. 동네 어귀에서 혹은 답사 길목마다 한그루 한그루 나무를 세는 것이지요. 가르치는 학생들한테도 교정의 나무를 세어 오라는 숙제를 냅니다.

나무를 세는 것은 단지 나무 갯수가 몇 개인지 알기 위함이 아니라 나무를 세다 보면 한그루 한그루를 이해하게 됩니다. 어렵게 말해서 근사법(近思法)이라고 하지만 저는 그것이 바로 격물치지(格物致知)이자 낮은 데서 높은 곳으로 가는 성리학적 공부라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나무 한그루 한그루에 다가가 나무들과 과거와 현재에 관해 대화를 나눕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 주위에서 흔한 혹은 흔하지 않은 박달나무 계수나무 대나무 측백나무 호두나무 향나무 배롱나무등이 이렇게 많은 사연들로 가득한가, 새삼스럽습니다.

박달나무 속에는 환웅이 내린 신화가 숨어 있고 측백나무에는 고흐의 깊은 내면이 담겨 있습니다. 팔만대장경의 800년 비밀은 산벚나무와 돌배나무에 숨겨져 있지요. 배롱나무는 사육신 성삼문과 중국의 당현종, 시인 도종환의 사랑을 흠뻑 받았습니다.

이밖에도 뽕나무 석류나무 호두나무 자작나무 향나무등 그냥 스쳐 지났던 숱한 나무들이 제가 공부했던 인문학적 상상력을 만나면서 여러 갈래로 가지를 뻗습니다. ‘나무 세기’는 또 다른 ‘인문학 읽기’인 셈이지요.

나무세기를 하다보면 재미있는 경험들이 많습니다. 어느 날인가는 박달나무를 발이 부르트도록 찾아 다니다 도로변에 우뚝 선 그 나무를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났던 적도 있습니다. 기쁨 때문이기도 했지만 눈앞에 나타 난 물박달 나무가 내가 상상했던 우주목(宇宙木) 혹은 세계수(世界樹)와는 달리 너무 왜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안아 보았습니다. 제 작은 가슴에 가득 들어 오더군요.

나무는 나 자신의 정체성, 인문학의 정체성, 미래 사회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제게 선택된 존재였습니다. 저는 나무와 함께 하면서 모든 위기가 나 자신의 무딘 감각, 편협한 사고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무는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웠으며 세상을 새롭게 그리고 넓게 볼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우둔한 내 질문에 기꺼이 상대해 준 나무는 저라는 한 존재가 제 자리에 바로 설 수 있도록 끊임없이 인내하며 지켜봐 줬습니다.

여러분들도 나무를 통해 좀 더 깊고 넓게 세상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나무의 마음 나무의 생명/이시오카 츠네카츠 지음 최성현 옮김/190쪽 6800원 삼신각

저는 평생 나무와 함께 살아 온 여든 넘은 일본의 궁목수입니다. 궁목수란 절이나 궁전같은 고대 건축물을 짓고 보수하는 사람입니다. 목수를 비롯해 미장이 석수장이같은 직인(職人)들은 한사람 몫의 제 구실을 하기 위해 오랜 세월이 필요합니다. 지름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계는 데이터를 넣으면 결과를 내 놓습니다. 중간 과정은 모르더라도 답이 나옵니다. 그러나 인간, 하물며 직인은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나무도 사람처럼 한그루 한그루가 모두 다릅니다. 훌륭한 목수는 각기 다른 나무의 성깔을 꿰뚫어 보고 거기에 맞게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나무에게도 성깔이 있느냐고요? ‘성깔’이라는 말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사용하는 사람에 달린 문제입니다. 성깔이 있는 것을 사용하는 것은 번거로운 일입니다만 잘 사용하면 오히려 좋은 일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깔이 강한 자일수록 명(命)또한 강합니다. 성깔이 없는 부드러운 나무는 약합니다. 개성을 파악해서 그것을 살려서 쓰면 강하고 오래 갑니다.

저는 이제까지 민가(민가(民家))는 한 채도 짓지 않았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집도 다른 목수가 지었습니다. 민가는 아무래도 돈에 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농사를 함께 짓습니다. 내 손에 얼마가 들어올까 생각하면 마음이 혼탁해집니다. ‘온 정성 다해 한다.’ 이 것이 궁목수의 마음자세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집 지을 때 나무도 심었습니다. 이 나무가 자라면 200년 후 새로 집을 지을 때는 안성맞춤 일테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겐 200∼300년이라는 시간감각이 있었던 거지요.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시간 감각을 가진 사람이 없습니다. 조금 더 사물을 긴 눈으로 보고 생각하는 생활이 중요합니다.

나무는 본래 알뜰하게 사용하고 바로바로 심기만 하면 영원히 사용할 수 있는 자원입니다. 사람도 또한 생물입니다. 나무도 사람도 자연의 분신입니다. 말없는 나무와 이야기를 나눠 가며 말없는 나무를 생명 있는 건물로 바꿔 가는 것이 목수의 일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이 스스로의 힘에 의해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천지간으로부터 생명을 받고 있는 나무 풀 그 외 동물들처럼 인간도 자연으로부터 생명을 받음으로써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연이 있음으로 해서 비로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나무 위 나무인생/마거릿 D. 로우먼 지음 유시주 옮김/320쪽 1만원 눌와

저는 20여년 넘게 호주 열대림에서 숲 꼭대기만 공부해 온 여성 생태학자입니다. 한국같은 온대림과 달리 열대 우림은 숲바닥뿐 아니라 숲 꼭대기(우듬지)도 봐야 합니다. 애초에 직업적으로 나무위에 올라 갈 생각은 없었습니다. 원숭이를 올려 보낼 수도 있고 망원 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도르레에 매달아 쓸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우듬지 식생에 관한 정확한 자료를 수집하기가 어려워 결국 제가 나무 등반가가 되기로 했습니다.

저는 환경 운동가는 아닙니다. 다만 우듬지 생물학을 연구하면서 겪은 제 경험을 생생하게 들려 드리는 것 자체가 열대 우림 파괴에 무심했던 우리에게 환경 보존의 필요성을 일깨워 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지난 백여년 동안 호주의 산과 들도 크게 바뀌었습니다. 인간은 산림 이곳 저곳을 사정없이 벌채하고 개간했습니다. 그 결과 토종 생명체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나무로부터 숲으로부터 인간은 너무 많은 은혜와 위안을 일방적으로 받기만 합니다. 인간의 욕심으로 차츰 병들어 가는 숲, 그 숲을 되살리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안들은 없을까요?

저는 전문가 이전에 한 사람의 여성이자 두 아이를 키르는 엄마입니다. 동양보다는 상대적으로 여성의 일에 대해 개방적인 서양이지만 제가 일을 시작하던 1970년∼1980년대 호주 변방 역시, 여성의 일차적 의무가 집안을 돌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도저히 적응할 수가 없었지요. 설거지를 하면서도 머릿 속으로 ‘탐사 장비를 설계할 수는 없을까? 애들 낮잠시간을 이용해 과학기사를 작성하면 어떨까?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밀고 다니면서 실험지에 새싹이 돋아 났는 지를 살펴볼 수는 없을까?’ 이런 생각으로 가득했지요.

남성들만의 영역이었던 현장 생물학에서 여성으로서 부닥쳐야 했던 어려움들은 오히려 저를 단련시켰습니다. 나고 자라고 썩고 재생하는 잎처럼 저도 개인적인 생활에서나 직업적인 길에서 똑같은 과정을 경험했습니다. 로프에 의존했던 호주시절부터 임신한 몸으로 유카리 나무에 오르기 위해 이동식 크레인을 사용했던 시절, 열기구를 이용해 탐사를 했던 아프리카 시절….이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흐르는 군요.

제가 일에서 배운 가장 값진 가르침은 불평을 하든, 소리를 지르든 똑같은 힘이 들지만, 그 결과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여성들, 일을 가진 엄마들이 제 이야기를 듣고 ‘소리 지르는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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