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진우]´삿대질 경선´

  • 입력 2002년 3월 29일 18시 27분


민주당 경선이 오늘과 내일 경남과 전북에서 치러진다. 총 16개 권역 중 지난 주말까지 6개 권역이 끝났으니 바야흐로 중반전에 접어드는 셈이다. 그런데 이미 승부는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니 하는 쪽이나 보는 쪽이나 맥이 풀릴 노릇이다. 결과가 뻔하다는 경선을 뭣하러 하나 싶기도 할 것이다. 어쨌든 이인제(李仁濟) 후보가 하나마나한 경선에 들러리나 서란 말이냐고 역정을 낸 것이 그럴 만 했던 것인지, 아닌지는 이번 주말에 표로 판가름될 것이다. 이 후보가 경선 포기 직전까지 갔었던 것을 보면 뜻밖의 결과가 나오기는 어려울 모양이다. 여기 저기 다 알아보고 짚어보고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으니까 때려치울 생각을 했겠지, 엄연히 선두를 달리고 있는 주자가 뜬금없이 판을 깨려야 했겠는가.

▼광주의 전략적 선택과 ´노풍´▼

이쯤에서 지나간 판을 되짚어보기로 하자(이하 존칭 생략). 3월9일 제주 경선. 한화갑(韓和甲) 1위, 이인제 2위, 노무현(盧武鉉) 3위. 워낙 바닥이 좁은 탓에 한화갑의 조직표가 힘을 발휘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3월10일 울산. 노무현 1위, 김중권(金重權) 2위, 이인제 3위. 영남 출신이 1, 2위를 한 것으로 보아 지역주의가 꽤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3월16일 광주. 노무현 1위, 이인제 2위, 한화갑 3위. 여기서 파란이 예고된다. 영남출신인 노무현이 광주에서 1위를 하다니! ‘광주는 위대하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동서화합의 ‘역사적 장(場)’을 열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같은 의미 부여에 인색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한꺼풀 벗겨보면 그것은 ‘광주의 전략적 선택’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광주의 전략적 선택이란 한마디로 본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를 꺾을 가능성이 높은 ‘대항마’를 밀어주자는 것이고, 이인제보다는 노무현이 낫겠다는 것이다. 광주 경선 이틀 전에 발표된 몇몇 여론조사 결과, 즉 이회창과 맞붙을 경우 이인제는 여전히 열세를 면치 못하는 반면 노무현은 오히려 우세하다는 ‘놀라운 소식’이 광주의 전략적 선택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점은 어렵잖게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광주에서 노무현은 이인제보다 104표를 더 얻었을 뿐이다(득표율은 노무현 37.9%, 이인제 31.3%). 당연히 앞설 것으로 믿고 있던 이인제로서는 충격이었겠으나 광주의 전략적 선택이란 관점에서 보면 도리어 이인제의 잠재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 결과로도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광주의 결과는 ‘노풍(盧風)’을 부르면서 ‘충청의 전략적 선택’으로 이어진다. 대전(3월17일)과 충남(3월23일)에서 이인제는 득표율 67.5%, 73.7%의 몰표를 얻는다. 언제까지 영호남이냐, 이번만큼은 우리 쪽에서도 대통령 한번 내야 하지 않겠느냐는 ‘충청인의 열망’이 결집된 것이다. 본선에서 이회창과 이인제가 맞붙을 경우 누가 이겨도 충청 출신 아니냐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이 작동했을 법도 싶다.

여기까지 보면 이인제가 주장하는 ‘음모론’은 어째 좀 이상하다. 광주에서부터 ‘김심(金心)’이 실린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면 대전과 충남의 결과는 무엇인가. 그곳은 원래 ‘이인제 땅’이어서 잠시 손을 거두었다는 것인지, 손을 썼는데도 약발이 듣지 않았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굳이 ‘음모의 냄새’가 난다면 강원(3월24일)에서 이인제가 노무현에게 7표 차로 진 다음날 3위를 달리던 김중권이 돌연 사퇴한 것을 들 수는 있겠다. 김중권이 물러남으로써 TK표가 대부분 노무현에게로 넘어갈 공산이 커졌으니까. 그러나 ‘음모론’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어느 정도나마 구체적이어야 한다. “연기가 나오면 어딘가 불이 있고 그림자가 있으면 실체가 있는 것” 정도로는 곤란하다.

▼´포지티브 게임´을 하라▼

노무현의 ‘오버’도 눈살을 찌푸릴 만하다. 아무리 예상점수가 나왔다고 해도 경선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는데 벌써부터 후보가 다됐는지 아는 모양이다. 정계개편 얘기는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다. 방식도 그렇다. ‘민주당식 생각’을 하는 한나라당 사람들을 데려와 몸집을 불리겠다는 것인데 그럴 경우 ‘한나라당식 생각’을 하는 민주당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명분이야 어떻든 인위적 정계개편은 민의(民意)를 무시하고 왜곡시키는 것이다.

이미 경선 무대는 노-이 간 이념논쟁으로 옮겨졌다. 말릴 일은 아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인물의 이념검증은 철저할수록 좋다. 다만 서로 삿대질하는 ‘네거티브 게임’ 말고 내 생각은 이런데 귀하의 생각은 어떠시냐는 ‘포지티브 게임’을 하기 바란다. 제발.

전진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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