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완배/입 다문 애널리스트

  • 입력 2002년 3월 29일 18시 29분


인터넷 보안업체인 장미디어의 장민근 사장이 28일 비리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코스닥시장에서 보안업체 중 ‘대장주(大將株)’로 꼽히던 장미디어의 주가는 이 사건의 영향으로 이틀 연속 하한가로 추락했다.

검찰은 장미디어가 영업실적이 거의 없는 데도 증자와 주가조작 등으로 외형을 부풀려 온 기업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실을 많은 증권 애널리스트들이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데 있다.

지난해 여름 한 애널리스트는 기자에게 “유명한 보안업체 한 곳을 방문했는데 명성에 비해 회사 내용이 기대 이하였다. 이익모델이 불투명하고 내실이 없어 보였다. 이런 회사 주가가 어떻게 2만원이 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 매도추천을 내서 투자자에게 사실을 알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특정 회사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면 투자자들한테 욕을 먹는다. 그런 이야기는 하는 게 아니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 회사가 바로 장미디어였다.

지난해 증권가에는 장미디어에 대해 애널리스트가 쓴 개별기업 보고서가 단 한편도 나오지 않았다. 회계감사에 비유하면 일종의 ‘의견거절’이었던 셈.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전문가들이 일제히 입을 닫은 마당이어서 기자도 이 종목에 대해 자신 있게 보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사장 구속 이후 보안업종 담당 애널리스트들은 대부분 “그 회사 언젠가는 한번 사고 낼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28일 오전 사장 구속 사실이 알려지기 직전까지 장미디어의 주가는 오름세를 보였다. 불과 한 시간 뒤에 터질 폭탄인 데도 순진한 개인투자자들은 그 폭탄을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여기고 투자에 나섰다.

침묵했다는 이유로 애널리스트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침묵 때문에 수많은 투자자들은 깊은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침묵하던 전문가그룹이 이번에도 “투자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자신이 져야 한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이완배기자 경제부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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