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개최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2002월드컵 개막을 두달여 앞두고 동아일보 월드컵 자문 위원단이 머리를 맞대고 월드컵 성공 개최의 ‘필요충분 조건’을 조목조목 따져봤다. 9명의 자문위원중 불가피한 개인사정으로 불참한 3명을 제외한 6명의 자문 위원들은 각자의 활동 분야만큼이나 다양한 의견을 쏟아냈다.
▼2002 한국의 이미지는?▼
▽로버트 길버트〓월드컵때 완벽한 경기장, 숙박시설 같은 기반 시설을 잘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어떻게 가꿔야 하는지 그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텔레비전을 통해 한국에 대한 첫 인상을 가지게 될 외국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느낌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 합니다.
▽이성〓정말 중요한 지적이에요. 지난해까지 1년 동안 세계 45개국을 여행했는데 외국에는 우리나라에 대한 이미지가 없거나 있더라도 부정적인 측면이 많았어요. 브라질에서는 월드컵 개최국인 우리나라를 소개하는데 첫 화면이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장면이었는데 이번 월드컵을 통해 한국의 이미지를 바꾸지 않으면 영영 못바꿀 수 있습니다.
▽강준호〓어떤게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냐 하는 것은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지요. 16강은 우선 정부 차원에서 관심을 가질 사안이 아닙니다. 지난 프랑스월드컵때 16강에 들어간 나라 기억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보다 경제 파급효과가 중요합니다. 한국개발원에서 예측하는 경제 파급효과는 약 11조원이고 고용창출 효과는 24만5000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경제 파급효과는 월드컵을 치르면 기본적으로 따라오는 것이고 다른 산업을 통해서도 할 수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월드컵이 아니면 얻기 힘든 것을 월드컵을 통해 얻는 것입니다. 한국 이미지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나는 이것을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마케팅하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브랜드를 마케팅하는 측면에서 볼 때 단군이래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코리아라는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정부에서 투자한다고 할 때 매년 수십조원의 돈을 쓰는 것 보다 더 큰 효과를 한달간의 월드컵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16강, 경제 파급효과, 국가마케팅 등 셋을 비교해 봤을 때 월드컵이 아니면 안되는 것은 국가마케팅입니다.
▽이성〓비행기를 타 보면 세계 각국의 아름다운 모습이 담긴 책자가 있는데 한국에 대한 소개는 없어요. 베트남 하노이 같은 도시는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곳으로 묘사돼 있습니다. 그런데 서울은 아직도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도시로 기억되고 있어요. 그런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지식인과 정부의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강준호〓정부는 국가마케팅 작업에 더욱 관심을 쏟고 전략적으로 해야합니다. 그냥 막연히 좋은 이미지가 아니라 구체적인게 있어야 한다는 거죠. 외국에서 10년 넘게 생활하면서 한국이라는 브랜드 때문에 피해를 보는 우리나라 사람, 기업, 상품을 많이 봤어요.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프리미엄을 줄 수 있는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야합니다.
▽김진국〓이런 문제는 정부에서 나서서 대사관이나 해외언론을 통해 노력해야할 것 같습니다.
▽강준호〓전세계 축구팬이 10억으로 추산되는데 우리나라에 오는 팬은 100만명도 되지 않습니다. 결국 그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서 마케팅을 해야 합니다. 월드컵 개최하는 동안 세계 각국에서 ‘코리아 캠페인’을 한다면 국가 마케팅 효과는 훨씬 클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을 상대로도 국가마케팅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나라 사람임을 자랑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정부가 캠페인을 해 주면 효과가 클 겁니다.
▽박희원〓자원봉사자들과 만났을 때 느낀 점인데 월드컵이 국내 문화에 끼칠 수 있는 효과도 크다고 생각해요. 자원봉사활동이 대표적인 예죠. 우리나라엔 자원봉사 문화가 전무하다시피해요. 자원봉사자들은 조직위에 소속돼 조직위가 맡겨 준 일을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수많은 소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어요. 월드컵이 끝나고 나면 자원봉사자들이 그냥 흩어지는 게 아니라 다른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우리나라의 스포츠 문화나 어떤 대규모 이벤트가 열릴 때 그것을 준비하고 즐기는 태도가 많이 변화될 겁니다.
▽함정임〓1년에 한 두번은 해외여행을 하는데요. 외국에 나갔다 온 후 우리의 것을 보면 현미경을 보듯이 잘 보게 되는데 지방에서 월드컵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 시간적인 촉박함 속에 어떤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을 감지할 수 있어요. 우리의 모습이 어떻게 비치느냐,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서 마케팅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우리가 가진 모습에 대한 자부심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삶이 도달해 있는 지점은 여긴데 이런 우리 모습에 대해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여유도 필요하다고 보는거죠.
▼그래도 이기는 경기를 보고 싶다▼
▽이성〓서울시 월드컵 준비 총괄 책임을 맡고 있는데 요즘은 거리 청소도 하고 도로안내표지판도 정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여하는 자원봉사자들이나 시민단체들이 흥이 안나는 것 같아요. 시간은 다가오는 데 오히려 열기가 떨어지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이제는 대표팀도 연습경기에서 이겨줬으면 합니다. 한번씩 이겨야 국민의 관심도 높아가고 월드컵을 준비하는데 국민의 역량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본선에서 반드시 16강에 올라야 한다는 이야기하고는 별개지요. 준비 과정에서 대표팀의 선전이 큰 힘이 된다는 겁니다.
▽김진국〓한국의 16강도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축구에 이변은 늘 있고 약자가 강자를 이길 수도 있어요. 온 국민의 응원, 날씨, 기후, 음식 등 개최국으로서의 이점을 살린다면 충분히 가능하지요. 국민들이 잘 응원만 해준다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겁니다. 국민들이 16강 가능성에 대해 너무 회의를 갖지 말고 선수들에게 16강에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으면 합니다.
▼보도는 균형있고 신나게▼
▽이성〓국내 언론은 그동안 경기에 지고 나면 수비가 문제다, 조직력이 없다는 식으로 비난해왔어요.그러지 말고 월드컵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같이 즐길 수 있도록 방향을 설정했으면 해요.
▽박희원〓월드컵때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뛰지만 그라운드 밖에선 전 국민도 함께 뛰고 있어요. 자원봉사자 등 주변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조명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로버트 길버트〓스포츠는 스포츠일 뿐이죠. 그런데 한국 매스컴은 지나치게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함정임〓보도 태도도 문제예요. 지는 과정에서 어떤 석연치 못한 점이 있을 경우 그런 잡음이 언론 때문에 더 커지는 것 같거든요. 균형있는 보도와 지면의 세련미에도 신경을 써야 된다고 생각해요.
▽김진국〓보는 즐거움이 필요합니다. 스포츠는 특히 보는 사람이 재미있어야 하죠. 신나야 합니다. 그리고 국민들이 궁금한 것을 찾아서 보도해야 합니다.
진행〓권순일차장대우 stt77@donga.com
정리〓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동아일보 2002월드컵 자문위원
△강준호-서울대 사범대학 체육학과 교수
△김진국-대한축구협회 유소년분과 위원장
△박희원-외국어 자원 봉사자
△이 성-서울시 시정기획관
△이승일-야후코리아 사장
△최수종-탤런트
△함정임-소설가
△허정무-축구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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