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우린 ‘귀신같은 상담원’

  • 입력 2002년 4월 1일 17시 29분


“따르릉 ….”

서울 종로구 종로5가 은석빌딩에 있는 삼성카드 콜센터. 고객으로부터 오는 전화를 일괄 처리하는 곳이다. 전화벨이 울리자마자 중앙컴퓨터는 이같이 분석한다.

‘카드번호 5310-7241-5569-1008인 홍길동씨의 전화임. 홍길동씨는 10만원 이하의 소액을 4회 연체한 적이 있으며 이 때문에 최근 신용한도가 축소됨. 이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음.’

전화는 자동으로 ‘상습연체고객 전문상담원’에게 연결된다. 상담원은 전화를 받기 직전 잠깐 홍길동씨의 신용현황과 양보 가능한 신용등급 수준을 점검한다.

예상대로 신용한도 축소에 대한 불만 때문에 온 전화였다. 협상은 금방 끝났다. 귀책사유가 홍씨에게 있는데도 신용한도를 일부 올려주자 기분이 좋아진 홍길동씨는 상담원이 권하는 휴대전화요금 자동이체서비스까지 주저 없이 신청했다. 정말 ‘귀신 같은 상담원’이었다.

삼성카드는 이 기능을 맞춤형 서비스의 바탕인 ‘고객관계관리(CRM)’의 핵심이라고 보고 이 콜센터를 ‘CRM센터’라 부른다.

▽상담원에게 도우미가 있다〓도우미는 물론 컴퓨터다. 고객이 콜센터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면 먼저 본인 확인을 위해 주민등록번호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게 된다. 즉시 컴퓨터 화면에는 해당회원의 신상기록은 물론 거래내용, 연체여부, 회원등급 등의 주요 정보가 떠오른다. 이를 통해 컴퓨터가 고객의 신용상태와 거래특성을 분류해 그의 불만내용이나 예상 관심사를 추론하는 것.

불량회원이나 연체회원은 자동적으로 전담 상담원에게 배정된다. VIP고객 역시 전문 상담원 몫이다. 컴퓨터는 고객을 수익 기여도, 위험도, 이탈 가능성 등에 따라 6개의 그룹으로 나눈다. 초우량고객은 상담 대기시간이 짧고 최우수 상담원이 응대하는 등 고품질 서비스를 받는다.

컴퓨터가 고객이 전화한 이유를 알아맞히는 비율은 50% 정도. 꽤 높은 확률이긴 하지만 미국의 신용카드회사 ‘캐피털 원’의 80% 적중률(캐피털 원 IR담당임원 폴 파킨)에 비하면 아직 실력이 많이 떨어지는 셈.

최재우 삼성카드 CRM운영팀 과장은 “그래도 상담원이 고객자료를 찾아본 후 답할 수 있었던 99년에 비하면 엄청나게 발전한 것”이라고 말했다.

▽CRM경쟁〓국내에서는 일단 삼성카드의 콜센터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

상담원 1600명을 보유한 LG카드는 4월 중에 CRM시스템 분야 세계 1위인 미국의 시벨사 제품을 도입할 계획이다. 고객관련 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이 시스템이 가동되면 고객이 언제, 어떤 상품 또는 서비스를 원하는지를 추론할 수 있게 된다.

김인원 LG카드 과장은 “예를 들어 백화점이나 골프숍 이용 고객에게 가맹점 할인행사 등의 정보를 미리 제공할 수 있었다”며 “작년에 이 시스템을 시범 운영한 결과 마케팅 취급액은 20% 늘고 고객만족도가 32% 증가했다”고 말했다.

현대 동양 비자 마스타 등 전업카드사는 물론 국민 외환 비씨 등 은행계 카드사도 수준의 차이는 있지만 CRM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카드사는 은행처럼 지점이 많지 않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수익이 많고 최근 급성장하는 가계대출시장에서 점유율을 올리기 위해 치열한 우량고객 확보 경쟁을 벌이면서 CRM센터와 상담원의 중요도가 날로 커지고 있다.

은행들도 CRM 기능을 한 단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더욱 정확한 맞춤형 상품을 만드는 것은 얼마나 방대한 고객정보를 모으느냐는 것이 관건. 신한은행의 경우 창구 직원들에게 고객이 창구를 방문할 때마다 대화 등을 통해 최소한 한 가지 이상의 고객정보를 데이터베이스에 추가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다른 은행들도 우편물 발송이나 각종 사은행사 등의 이벤트를 통해 고객 정보를 모으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신한은행 이신기 차장은 “우리 은행들이 갖고 있는 고객정보는 고객당 기껏해야 10∼20개이지만 외국 선진은행들은 100개가 훨씬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것이 결국 금융고객의 만족도로 연결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갈길이 멀다〓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는 캐피털 원이 우편물을 발송하는 ‘공장’이 있다. 한국의 경우 모든 카드 고객이 똑같은 광고자료를 우송받지만 미국에서는 고객마다 받는 서비스안내와 광고전단이 다르다.

고객이 어떤 언어를 쓰는지, 소득은 어느 정도인지, 취미는 뭔지, 좋아하는 식당은 어떤 종류인지 등을 일일이 파악해 각 고객에게 맞는 자료를 보내는 것이다. 식도락가에게는 이색식당의 자료가, 골프광에게는 골프 관련 상품정보가 풍부한 자료가 우편물에 들어간다. 화교(華僑)에게는 중국음식점이나 실용적인 상품정보가 든 중국어 자료를 보낸다. 이 같은 작업은 고객성향을 구분한 바코드를 통해 자동으로 진행된다.

하루에 수십만 통의 우편물을 보내고 그 반응을 점검 기록하면서 고객의 성향을 분석하며 또 콜센터에 걸려오는 고객의 전화를 꾸준히 분석해 입력한 결과다.(캐피털 원의 마조리 커넬리 정보기술담당 부사장)

김상철기자 sckim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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