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을 보고 맛을 아는 샘표 간장∼.”
무심결에 흥얼거리는 CM송. 너무도 익숙한 멜로디지만 사실은 10여 년 이상 방송을 타지 않았던 음악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놀라지 마시길. 귀에 익은 CM송의 가락은 수십 년 동안 여운을 남긴다고 한다.
새우깡과 맛동산, 스크류바를 먹으며 자란 30, 40대의 뇌리에 새겨진 ‘국민 가요’ CM송들이 부활하고 있다. 향수를 자극하는 복고(復古) 마케팅과 맞물려 추억의 CM송들이 원래의 모습 그대로, 또는 업그레이드돼 우리 곁으로 돌아온 것.
70년대 CM송 분야의 대부로 2000여 곡의 CM송을 작곡한 음반기획사 서울오디오 김도향(金道鄕·58) 사장은 “소비자는 그리움을 바라고, CM송은 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 같다”고 말한다.
▽구관이 명관〓롯데제과는 90년대 중반 폐기 처분했던 “멕시코 치클처럼 부드럽게 말해요. 롯데껌처럼 향기롭게 웃어요∼” CM송을 2000년부터 다시 쓰기 시작했다. 당시 이미지 전환을 위해 CM송 없는 광고도 했던 롯데제과는 이 노래만큼 효과적인 광고는 없다고 ‘뒤늦게’ 결론을 지었다.
롯데제과 홍보실 최경인 과장은 “이 CM송이 광고하는 주시 후레시 등 롯데 껌 3총사의 인기가 여전해 CM송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80년대 초 인기가 대단했던 동양제과의 오리온 초코칩 쿠키 CM송 “초코가 내려와 쿠키를 만났네∼” 역시 90년대 중반 방송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이 CM송은 화려하게 되살아났다.
동양제과 광고팀 황보천 팀장은 “옛 CM송의 친숙한 이미지를 활용한 마케팅으로 매출이 10% 나 늘었다”며 “젊은층에게도 먹히고 있다”고 말했다.
55년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80년대 중반 모습을 감췄던 “맛을 보고 맛을 아는 샘표 간장∼”은 지난해 4월부터 다시 방송을 타고 있다.
샘표식품 광고팀 김용희 과장은 “40, 50대 주부들에게는 옛 향수를 자극하고 20, 30대 주부들에게는 40, 50대처럼 친근한 CM송으로 만들기 위해 다시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면서 “당초 멜로디를 확 바꾸려고 했는데 예전 것이 좋다는 결론이 났다”고 말했다.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 드려요, 아름다운 날들이여, 사랑스런 눈동자여∼.”
70년대 대표적 CM송의 하나인 청량음료 오란씨 CM송도 요즘 한창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73년부터 불렸으니 30년을 꽉 채운 이 CM송은 지난해부터 휴대폰 벨소리로도 다운받을 수 있어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
▽포크에서 랩, 록으로〓옛 선율 그대로를 살린 CM송들이 있는가 하면 시대에 맞게 변형한 CM송도 적지 않다. 통기타와 생머리 분위기에서 전자기타와 노랑머리 분위기로의 변신을 꾀한 것들이다.
“12시에 만나요∼”로 유명한 해태 부라보콘이 바로 이 경우. 70년대 최대의 히트 CM송으로 70년 4월 제품이 나온 뒤 최근까지 수량으로는 32억2000만개, 포장지를 더하면 지구를 13.7바퀴나 돌 수 있을 만큼 히트한 이 상품의 CM송은 예전과 크게 다르다.
부라보콘 CM송은 당초 맑고 서정적인 느낌을 줬다. 그러나 인기 댄스그룹 god가 랩으로 “브라보, 요!, 요!, 12시에 만나요”로 부르는 최근의 모습은 시대 변화를 실감케 한다. 전에 없던 발랄함과 경쾌함, 역동성이 담겨 있다.
해태제과 이병권 기업홍보부장은 “주 소비층의 변화에 따라 계속 CM송을 업그레이드 해 왔다”면서 “그러나 마지막 부분인 ‘살짝 쿵 데이트’ 부분은 옛 멜로디를 그대로 남겨뒀다”고 말했다.
역시 ‘국민가요’ 수준인 새우깡 CM송 역시 요즘은 록 버전이다. 농심은 1월부터 신세대 댄스그룹 ‘신화’를 앞세워 이 CM송을 광고하고 있다. 시끄러운 콘서트 분위기를 물씬 풍기면서 ‘톡톡’ 튀는 록으로 편곡된 이 CM송은 신세대의 입맛에 맞는다는 게 농심의 주장. 농심 관계자는 “오래돼 촌스럽다는 새우깡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봄이 오려나〓80년대 이래 사양길을 달려온 CM송 시장은 최근 새로운 봄을 약속하는 듯하다.
“아름다운 아가씨, 어찌 그리 예쁜가요∼”(해태 껌 아카시아), “맛동산 먹고 즐거운 아침”(해태 맛동산), “이상하게 생겼네, 롯데 스크류 바” 등 인기 CM송을 만든 김도향 사장은 “90년 이후에는 CM송이 몇 년에 한 곡 나올 정도로 시장 자체가 메말랐다”면서 “CM송 제품의 주 소비층인 청소년들에서도 복고 바람이 이는 만큼 CM송도 과거보다 활기를 띌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영화 ‘친구’로 복고 마케팅이 일기 시작한데다 백그라운드 음악으로 외국 음악을 선호하던 추세가 최근 주춤하는데 주목하는 이들도 있다.
CM송 프로덕션 도깨비의 윤우호 음악감독은 “아직 CM송의 부활을 말하기는 이르다”면서도 “외국음악 사용료가 너무 비싼데다 복고 바람이 계속 일고 있어 예전처럼 비관적이지는 않다”고 말했다.
광고 기획사 버트커뮤니케이션의 최희용 국장은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추억의 CM송을 다시 활용해 광고에 나서는 기업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