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그때 그이야기]1회 우루과이대회<상>

  • 입력 2002년 4월 1일 18시 05분


우루과이-아르헨티나의 결승전.
우루과이-아르헨티나의 결승전.
《‘꿈의 구연’ 월드컵. 1930년 제1회 우루과이대회를 시작으로 1998년 제16회 프랑스대회까지 월드컵은 지구촌 인류의 피를 들끊게 하는 장엄한 드라마였다. 5월31일 막을 올리는 제17회 월드컵을 앞두고 역대 월드컵 대회를 되돌아봄으로써 2002한일월드컵의 성공 개최 비결을 찾아본다.》

사람들은 그를 ‘월드컵의 아버지’로 부른다.

프랑스축구협회의 초대 회장이자 1920년부터 56년까지 국제축구연맹(FIFA)의 수장으로 세계 축구계를 이끈 줄 리메는 월드컵 창설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 황금의 월드컵에‘줄 리메 컵’이란 이름이 붙은 것도 이 컵의 기증자이자 월드컵 탄생의 산파역을 해낸 그를 기리기 위해서였다.

줄 리메 회장은 당시 세계 규모 대회 개최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물론 국제축구대회론 올림픽이 있었지만 올림픽은 아마추어선수들의 출전만 허용했기 때문에 이미 많은 프로축구팀을 보유하고 있는 여러 나라들의 불만이 컸다. 각국의 공감대를 얻어 26년 FIFA 총회에선 월드컵 개최를 결정, 드디어 명실상부한 최고의 축구 잔치가 벌어지게 됐다.

이제 문제는 제1회 월드컵의 개최지 선정. 29년 총회에선 24년과 28년 올림픽축구에서 연속 우승하는 등 실력면에서 최고 수준인데다 대회가 열리는 해인 1930년이 독립 100주년인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를 첫번째 개최지로 결의했다. ‘새가 돌아오는 강’이란 뜻의 우루과이에 ‘행운의 새’가 날아든 셈이다.

참가팀의 여비와 체재비를 전액 부담한다고 약속했을 정도로 1회 월드컵 유치에 열성을 보인 우루과이는 개최가 확정되자 서둘러 대회 준비에 들어갔다. 그들의 야심찬 계획 가운데 하나는 10만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센테나리오 스타디움’의 건설. 당시 우루과이 인구가 190여만명이었으니 경기장 규모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이 ‘센테나리오 스타디움’은 1930년 초에 착공되는 바람에 밤낮없이 공사를 했음에도 끝내 당초 우루과이가 개막전을 치르기로 예정된 7월13일까지는 완공되지 못했다.

이에 우루과이는 혁명기념일을 하루 앞둔 프랑스가 멕시코와 다른 경기장에서 영광스러운 제1회대회 개막전을 치를 수 있도록 양보했고 우루과이는 대신 7월18일 비로소 완공된 ‘센테나리오 스타디움’에서 만원 관중이 들어찬 가운데 개장 경기를 가질 수 있었다.

제1회 우루과이월드컵에선 비록 선박을 이용한 먼 여행이 부담스러웠던 많은 유럽국가의 불참으로 유럽 4개국, 미주 9개국 등 13개 국가가 예선없이 초청 형식으로 경기를 치렀지만 일단 월드컵대회가 출범했다는 데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프랑스에서 승리의 여신이 새겨진 월드컵을 직접 품에 안고 우루과이행 배에 올라탄 순간 줄 리메의 오랜 꿈은 실현됐던 것이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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