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것이 사람팔자라고 했던가. 이 사건은 평범하게 살던 한 여자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고 만다. 바로 요크 공작 부인, 남편이 퇴위한 형을 대신해 왕위에 오르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왕비가 된 엘리자베스 바우스-리언이 바로 그다. 그는 이 고귀한 자리가 별로 탐탁지 않았던 모양이다. 큰 동서 월리스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예 왕래를 끊고 살았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그래도 왕비로서 15년, 그리고 남편 조지 6세가 사망한 뒤 반세기 동안 그는 ‘영국의 어머니’로 불리며 왕실인사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엊그제 101세로 세상을 떠난 엘리자베스 여왕 모후, ‘퀸 마더’ 얘기다.
▷퀸 마더에 대한 일화는 적지 않지만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얘기가 가장 유명하다. 독일 공군기의 공습이 시작되자 주위에서 런던을 떠날 것을 권했으나 그는 듣지 않았다. 두 공주라도 캐나다로 보내자는 말에 퀸 마더는 “공주들은 나와 함께 있을 것이고, 나는 왕과 함께 있을 것이며, 왕은 끝까지 런던에 남아있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실제로 버킹엄궁이 폭격으로 부서지는데도 조지 6세 부처와 두 딸은 궁 안에 남아 있었다고 한다. 무차별 공습으로 런던이 불바다가 되는데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버틴 영국인의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퀸 마더는 왕실의 위엄을 지키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러나 말년의 퀸 마더는 별로 행복하지 않았을 것 같다. ‘아직도 왕실이 필요한가’라는 주장이 시도 때도 없이 나왔으니까. 여기에 먼저 세상을 떠난 둘째딸 마거릿 공주와 손자인 찰스 왕세자, 손녀 앤 공주 모두 결혼생활이 파국으로 끝난 것 등도 그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줬으리라. 엘리자베스 여왕 전기를 집필한 벤 피몰트는 ‘영국의 21세기는 퀸 마더의 장례식에서 시작할 것’이라고 썼다. 어떤 시작일지 지켜볼 일이다.
최화경 논설위원 bbchoi@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