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공학 발전을 위해 써달라며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개인재산 300억원을 쾌척했을 정도로 손이 큰 정 전 사장이지만 한편에선 ‘인색하다’와 ‘무정하다’는 원망도 무수히 듣는다. 원망의 대부분은 ‘연고’를 돌봐주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정 전 사장은 학연 지연 혈연 등에 얽힌 ‘특수관계인들’이 취업 등의 청탁을 해오면 대개는 “들어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정중하게 사절한다.
“돈이 없어서 못 돕는 게 아니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고향을 따지고 출신학교를 따져서는 이 나라가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 정 전 사장의 설명이다.
정 전 사장과 가까운 사이인 이언오(李彦五)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는 “정 전 사장의 친한 친구가 아들 인사 청탁을 들어주지 않는다며 정 전 사장에게 ‘사람이 매몰차다’고 비난했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그러나 정 전 사장은 겉으로는 차갑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마음속으로는 부탁을 거절한 것에 대해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전했다.
정 전 사장 본인은 “연고를 따르지 않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라며 “연고주의가 문제라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만, 연고주의 배격을 실천하는 사람이 드문 것도 그 때문”이라고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연고에 관한 그의 ‘결벽주의’는 자녀교육에서도 잘 드러난다. 아들들이 회사를 보게 되면 욕심을 낼까봐 아예 회사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자녀교육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정 전 사장은 믿고 있다. 자기 앞길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줬다는 것.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한 두 아들은 현재 미국 카네기멜론대와 남캘리포니아대(USC)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고 있다.
유니코써어치 유순신(劉純信) 사장은 “연고주의를 멀리한 것이 정 전 사장을 성공으로 이끈 가장 큰 요인”이라고 말했다.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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