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분양가 규제]집값 안정 기대…재건축엔 찬물

  • 입력 2002년 4월 2일 17시 24분


다음달부터 서울지역 아파트 분양가가 사실상 규제를 받음에 따라 아파트 시장에 큰 변화가 올 것으로 보인다.

당장 건설업체들은 서울시와 구청이 어느 정도의 분양가를 ‘적정 수준’으로 보고 분양 승인을 내줄지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분양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소비자들도 이번 조치로 행여나 아파트 공급이 줄어들지나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분양가 상승 추세는 주춤해질 듯〓서울시가 분양가가 과도하게 높은 아파트에 대해서는 분양 승인을 내주지 않기로 함에 따라 새로 분양되는 아파트의 분양가는 다소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분양가를 높게 책정했다가 분양 승인이 나지 않으면 사업 기간이 길어져 업체가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분양가가 높으면 좋지만 분양 승인을 못 받으면 금융비용이 늘어나 사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며 “분양가를 다소 낮추더라도 제때 분양 승인을 받는 것이 오히려 이익이 된다”고 말했다.

한국주택협회가 4일 긴급 이사회를 소집, 분양가의 과도한 인상을 막는 방안을 업계 차원에서 공동 논의키로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기존 집값도 다소 떨어질 듯〓분양가 상승의 가장 큰 문제는 ‘집값 상승 도미노 현상’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분양가가 높은 아파트가 분양되면 인근에 있는 기존 아파트의 시세도 그 수준에 맞춰 오르게 된다. 기존 아파트 주민들이 높게 책정된 분양가를 가이드라인으로 보고 높은 가격에 매물을 내놓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존 아파트의 시세가 올라가면 주변에서 새 아파트를 분양하는 업체가 다시 분양가를 올리는 ‘악순환’이 벌어지게 된다.

이번 조치로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면서 기존 아파트값의 상승 추세는 다소 누그러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영진 내집마련정보사 사장은 “지난해 말부터 지속된 집값 상승세의 주된 요인 중 하나가 천정부지로 치솟던 신규 아파트 분양가였던 만큼 기존 아파트값이 다소 안정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재건축 시장에 찬물〓분양가 간접 규제로 가장 타격을 입게 되는 분야는 재건축 시장이다. 지금까지 서울지역에서 공급되는 재건축 아파트의 조합원들은 추가 부담금을 덜 내기 위해 경쟁적으로 일반 분양 아파트 가격을 올렸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분양가에 제한을 받게 되면 사업 추진이 벽에 부닥칠 공산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재건축 사업의 속성상 조합원들이 부담해야 할 공사비가 높아지면 자칫 사업 자체가 백지화될 수도 있다”며 “서울에서 분양되는 아파트 대부분이 재건축 물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주택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적정 분양가는 어떻게 결정될까〓서울시는 분양 승인을 신청한 모든 아파트에 대해 분양가 산출 근거를 서류로 제출하도록 하지는 않을 방침이다. 모든 아파트에 대해 원가 검증을 하게 되면 분양 승인 일정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분양 승인 신청 물량 가운데 주변 시세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은 분양가를 책정한 아파트에 대해서만 산출근거 서류 제출을 요구하기로 했다. 이 서류에는 아파트 부지 계약서 사본, 건축자재 비용, 인건비 등 아파트 건설에 필요한 모든 비용과 이윤 규모 등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서울시는 업체가 제출한 분양가 산출근거 서류를 기초로 철저한 원가 검증을 통해 적정 분양가 수준을 결정해 분양가 인하를 유도할 계획이다.

그러나 서울시의 정책 의도가 제대로 먹혀 들어갈지는 의문이다. 원가 명세를 꼼꼼히 따져보아야 할 항목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특히 마감재는 분양가 자율화 이후 워낙 다양하고 세분화돼 제한된 시간 안에 일일이 검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들다.

또 구청이 자체적으로 원가를 검증하기 때문에 객관성을 담보하기가 힘들다는 점도 문제다. 사실상 분양 승인권을 갖게 된 구청을 상대로 업계가 로비를 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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