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해고…'상처뿐인 37일'

  • 입력 2002년 4월 2일 18시 40분


2월 25일 이후 37일째 장기 파업을 벌여온 발전산업노조가 2일 파업을 풀고 업무에 복귀하기로 결정한 것은 현실적으로 파업을 계속하기 힘든 상황인 데다 상급단체인 민주노총도 대대적인 연대 파업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날 노-정 양측이 마련한 합의문은 서로 자신들의 입장이 관철됐다고 주장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고 있어 향후 논란과 대립이 재연될 소지를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쟁점 타결의 해법〓발전노조의 장기파업 명분이던 ‘민영화 철회’ 요구와 관련해 노사는 2일 ‘민영화 관련 교섭은 논의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합의했다. 이는 ‘민영화는 교섭 대상이 아니다’는 당초 정부 입장과 거의 같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정부는 ‘민영화 논의 배제’는 기업의 구조조정 실시 여부가 원칙적으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와도 일맥상통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다만 정부는 발전노조와 민주노총에게 명분을 주기 위해 노동계가 마지막으로 요구했던 ‘민영화 노코멘트’와 비슷한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노조 측으로서는 해석을 달리할 여지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논의 배제’는 ‘교섭대상이 아니다’라는 뜻이라기보다는 ‘서로 언급하지 말자(노 코멘트)’에 훨씬 가깝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조로서도 ‘논의 배제’ 구절을 놓고 민영화 철회 요구를 달성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논의 배제’를 전제로 합의문에 있는 ‘중노위의 재정을 존중한다’는 구절에 주목하고 있다. 중노위는 3월 8일 재정에서 ‘민영화는 노사가 협의하라’며 개입하지 않았다. 노조가 이번엔 넘어가지만 민영화 불씨가 살아 있다고 해석할 논란이 있는 셈이다.

▽긴박했던 타결 과정〓지난달 27일 민주노총이 정부에 ‘민영화 노코멘트’를 제시하면서 노동계와 정부간의 핑퐁식 협상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정부는 지난달 30일 ‘민영화는 교섭대상이 아니다’라는 협상 대안을 제시했다.

노동부와 민주노총 관계자들은 1일 밤 서울 롯데호텔에서 철야 협상을 벌인 데 이어 2일 오전 다시 만나 연대 총파업을 목전에 두고 ‘민영화 논의 배제’로 의견을 모았다.

▽파업 후유증〓5개 발전회사는 그동안 1∼3차 징계심사위원회를 열어 파업 참가 조합원 342명의 해임을 확정했다. 또 노조 간부 109명을 대상으로 파업 손실액 62억3000만원을 가압류했다.

업무에 복귀하더라도 징계와 민형사상 책임 범위를 놓고 노사간 ‘파업 여진(餘震)’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발전회사는 미복귀자 3900여명에 대해 148억2000만원의 가압류를 신청했고 노조는 해임조치에 대해 중노위 등에 구제신청을 할 예정이다. 또 발전노조 조합원들이 업무에 복귀하더라도 파업 참여파와 비참여파, 조기 복귀자와 최종 복귀자 간에 갈등과 마찰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

회사 측으로서도 조합원들을 다독거려 발전소를 원활하게 운영하려면 상당한 고충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노-정 관계 전망〓한동안 노-정 관계가 경색 국면을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월드컵대회 등 대규모 행사를 앞두고 일단 노사평화를 이루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민주노총은 2차 총파업 돌입 직전에 협상이 타결돼 일단 큰 부담을 덜게 됐다. 민주노총이 파업 돌입 성명서에서 밝힌 대로 ‘정치 투쟁’인 총파업을 강행할 경우 부담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 민주노총은 조직을 강화해 올해 임단협에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노동연구원 최영기(崔榮起) 부원장은 “앞으로 노동계의 민영화 반대 투쟁이 크게 약해질 것”이라며 “이번 협상 타결을 계기로 다양한 형태의 노-정 대화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진기자 leej@donga.com

구자룡기자 bonhongj@donga.com

▼합의서▼

노사는 이번 파업으로 인해 국민에게 끼친 피해에 대해 정중하게 사과 드리며 앞으로 이와 같은 불행한 사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법과 원칙을 준수하고 노사화합을 바탕으로 발전산업의 미래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약속하며 다음과 같이 합의한다.

1.노조는 2002년 3월8일자 중앙노동위원회 중재재정을 존중하여 발전소 민영화 관련 교섭은 논의대상에서 제외한다.

2.회사는 조합원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과 징계가 적정수준에서 해결되도록 노력하며 필요한 경우 이를 관계당국에 건의한다.

3.노조는 파업을 중단하고 즉각 회사에 복귀한다.

▼발전파업일지▼

△2001. 9.17 발전회사 노사 협상 개시

△2002. 2. 9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신청

△2002. 2.24 노조 명동성당 농성 돌입

△2002. 2.25 노조 파업 돌입

△2002. 2.26 민주노총 1차 연대 파업

△2002. 3. 8 중노위 중재재정

△2002. 3.12 1차 징계위원회 49명 해임

△2002. 3.19 2차징계위원회 147명해임

△2002. 3.21 사장단 25일까지 미복귀 자 전원 해임 방침 발표

△2002. 3.25 연세대 집회에 경찰 투입

△2002. 3.26 민주노총 2차 파업 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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