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그 때 그이야기]2회 이탈리아대회<상>

  • 입력 2002년 4월 3일 17시 56분


1934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이탈리아와 체코 선수들이 결승전에 앞서 관중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 있다.
1934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이탈리아와 체코 선수들이 결승전에 앞서 관중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 있다.
1934년 제2회 이탈리아월드컵은 최초로 정치적으로 이용된 대회였다. ‘축구가 국가 권력의 과시수단’으로 이용된 첫 대회로 꼽힌다. 대회 포스터도 오른손을 높이 쳐든 파시스트적 경례를 디자인한 것이다.

자신의 권위를 세계에 과시하고 싶은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는 제1회 월드컵 개최권을 우루과이에 뺏긴 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개최권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모든 비용을 부담하겠다는 조건를 제시하고 집요한 공략을 앞세워 1932년 국제축구연맹(FIFA) 스톡홀름 총회에서 제2회 대회 개최권을 따냈다. 결국 FIFA의 이 결정은 파시즘과 무솔리니에게 월드컵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최고의 기회를 제공하게 됐다.

무솔리니는 이탈리아의 전경기를 관전했는데 매경기 승리를 차지한 이탈리아의 선수들을 향해 보내는 관중들의 환호가 자신을 향한 열광으로 착각하고 있었을 정도로 월드컵을 통해 심한 자아도취에 빠졌다.

또 무솔리니는 “승리 아니면 죽음을…”이라는 내용의 전보를 자국 팀 선수들에게 보냈을 정도로 대회 분위기를 살벌하게 몰고 갔다. 그리고 “조국을 위해 죽어라”는 파시즘적 플레이를 앞세워 끝내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이탈리아는 순수한 경기측면으로 볼 때에도 우승할만한 팀이었다. 당시 1930년 6월부터 홈에서 열린 경기에서 단 한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본선에서 스페인 오스트리아 체코 등 세 번의 힘든 상대를 만났으나 이탈리아 선수들은 잘 극복해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월드컵 개최권을 따기도 전에 이탈리아의 우승 계획이 수립되는 등 ‘만들어진 우승’이란 비난도 없지 않았다. 실제로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준결승(오스트리아 2-1승)이 끝난뒤 헝가리의 유고 메이슬 감독은 “축구가 아니라 싸움이었다”고 말했고 이탈리아의 준결승 상대를 만들어주기 위한 경기였다는 의혹을 샀다.

제2회 대회는 처음으로 예선을 거쳐 16개국이 본선에 진출했다. 예선신청 31개국을 반으로 줄이다보니 16개국이 됐고 이 16개의 본선진출국 수는 1978년까지 유지됐다. 남미에서 2팀, 북미 1팀, 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이집트가 출전했으며 나머지 12개팀은 유럽 나라들이 올라왔다. 1930년 우루과이대회에 많은 유럽나라들이 불참한데 대한 반사작용으로 1934년 이탈리아대회에는 남미쪽의 무관심이 나타났다. 이 대회는 1회 대회 조별리그와 달리 8개팀을 톱시드에 배정하고 지면 탈락하는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됐다.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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