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플레이 칭찬합시다 5]표절-연줄 거부 이충기씨

  • 입력 2002년 4월 4일 18시 11분


한국 건축계의 병폐는 ‘끼리끼리’ 해먹는 현상 설계 공모전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현상 설계 공고가 나면 응모자들은 이리저리 심사위원들을 알아내 자신의 응모 사실을 알린다. 그리고 나면….

현실이 이렇다 보니 힘없고 줄 없는 사람은 한두 번 시도하다 제풀에 지쳐 포기한다.

그러나 이 사람은 다르다. 건축가 이충기(李忠基·42) 한메건축설계사무소장.

그는 1996년부터 매년 두세차례 이상씩 꾸준히 현상 설계 공모에 응한다. 심사위원을 전혀 찾아가지 않는다. 그러니 당선될 리 없다. 정확히 말하면 2등은 종종 하지만 1등은 애초부터 어렵다. 그에겐 학연 인맥도 필요 없고, 남의 작품 흉내내는 표절은 더더욱 있을 수 없다. 심사위원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작품을 만들 필요도 없다. 믿는 것은 오직 양심과 실력이다.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떨어질 게 뻔한데 뭐 하러 응모하느냐”고 핀잔 섞인 말을 건네곤 한다. 이 소장의 대답.

“저라고 왜 유혹이 없겠어요. 지도교수께서 심사를 맡은 적도 있었습니다. 평소 연락도 안하다가 현상 공모 때 불쑥 찾아간다는 게 좀 우습지 않나요. 아마 제 성격 탓인가 봐요.”

떨어질 것 각오하고 꾸준히 현상 설계에 응모하는 이유에 대해 이 소장은 “현상 공모는 건축계의 축제여야 한다. 축제가 되려면 독창적인 작품을 갖고 직접 참여해야 한다. 속 상하고 화가 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래도 참가해서 바꿔야 한다”고 답한다.

김영섭 건축문화설계사무소장은 “이 소장은 깨끗한 손”이라면서도 더 이상의 언급을 회피했다. 그의 회피 이유가 인상적이다.

“제가 이 소장의 대학 선배입니다. 그러니 이 소장을 칭찬하면 선후배가 짜고 한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더 이상 노 코멘트입니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남의 작품 흉내내지 않고, 그렇게 일하다 보니 저절로 남는 것은 실력이다. 이 소장이 1999년 설계한 대전∼진주 고속도로의 상하행선 금산 휴게소 두 곳은 환경과 인간의 조화를 통해 휴게소 건축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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