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플레이 칭찬합시다 6]권길중 서울영등포고 교장

  • 입력 2002년 4월 5일 18시 16분


서울 영등포고 권길중(權吉重·62) 교장은 산적한 교육 문제를 ‘외부’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스스로 개선하려고 애쓴다. 제도 보완도 중요하지만 우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999년 교육부가 학생 봉사활동을 시행하라는 지침을 내렸을 때의 일이다. 당시엔 여건이 조성되지 않아 학생들이 봉사활동을 할 곳을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 때문에 거짓이나 편법 확인서가 남발되기도 했다.

당시 모 여중 교장으로 재직하던 그는 학부모들에게 봉사활동 수요기관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해당 기관도 학부모들의 문의에는 부담 없이 응했다. 이에 그는 부모와 학생이 함께 봉사활동에 참여하도록 했다.

이는 ‘학부모 지도단’이 탄생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학부모 지도단은 3월 현재 서울의 중고교 130곳에 구성돼 있다. 권 교장은 “현장의 문제를 먼저 해결한 뒤 조용하게 물결치듯 확산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사의 노력만으로도 수업을 획기적으로 바꿔 학생들의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고 스스로 생각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또 이 학교에서 주당 1시간씩 ‘무수업 시간표’를 짜고 과목별로 교사들이 모여 수업개선을 토론하도록 한 적이 있다. 이 결과 교사들은 자신감을 갖게 됐고 잠자는 학생도 없어졌다.

그가 무조건 자기 생각을 교사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교사들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교사들을 탓하기보다는 아이디어를 아낌없이 버리는 편이다. 교사들이 공감할 때 효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우리 교육의 문제를 누구보다 더 잘 안다. 그는 “보충수업 실시 여부는 학교장 자율에 맡겨야지 교육부가 지시하는 것은 규제”라고 말했다. 교육 같은 전문 분야를 여론에 따라 결정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는 전국교직원노조도 색안경을 끼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노조가 선택하는 ‘투쟁방식’은 학생들에게 사랑을 전달하기 힘들다고 본다.

그는 올해 8월이면 정년이 된다. 자신의 ‘자력 개선’ 방식을 지금의 학교에 뿌리내리기에는 시간이 모자라지만 조급해하지 않는다.

“내가 못하면 후임자가 할 겁니다. 내가 다른 교장들보다 더 나은 것은 아니니까요.”이 진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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