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대한민국은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주요 신문을 국유화하고, 그래도 성에 차지 않으면 그 중 하나쯤은 폐간할 수 있는 그런 수준의 나라인가. 둘째, 대한민국의 기자들, 특히 문제의 밥자리에 참석한 5개 신문 방송 기자들은 취재와 기사를 위해 정치인과 밥자리를 갖는가, 아니면 공짜 술과 밥을 얻어먹기 위해 그런 자리를 갖는가. 셋째, 대한민국의 유권자는 거짓말 잘하고, 말 바꾸기 잘하고, 말 돌리기 잘하는 정치인이 일으키는 바람에 쉽게 농락 당하는 그런 수준의 국민인가.
▼말재간 정치인에 농락▼
먼저 도하 각 신문의 보도를 종합해 보면 노무현 고문이 정확하게 ‘국유화’라는 어휘를 구사했는지에 관해서는 진술이 엇갈리지만 대화의 전후 맥락으로 보아 그런 뉘앙스를 풍기는 얘기를 한 것은 사실인 것 같고, 특히 동아일보에 관해 ‘폐간’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후보는 6일 민주당 인천 경선 합동연설회에서 자신의 발언에 대한 주요 신문들의 보도를 ‘모략’이라고 반발했다고 한다.
노 후보는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사실에 근거한 보도로 궁지에 몰리자 오히려 적반하장(賊反荷杖)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기 알맞은 반발이라 아니할 수 없다. 솔직히 노 후보의 밥자리 발언은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라면 성한 정신으로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지 않는가. 차라리 폭탄주에 취해 실언을 했노라고 솔직하게 털어놓고 사과하는 것이 더 떳떳하리라고 본다. ‘쓰레기 같은 모임’ 운운한다면 거기에 참석한 5명의 기자 꼴은 어떻게 되는가.
둘째, 노 고문의 발언이 다른 출처로부터 풀(pull·정보 공유) 받은 이인제 기자(?)의 특종 보도로 파문을 일으키자 문제의 모임에 참석했던 기자들이 ‘비보도(off the record)’ 약속 운운하면서 발언 내용의 확인을 거부했다니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그런 엄청난 얘기를 들었다면 당시에 즉각 보도했어야 했다. 백보를 양보하더라도, 발언 내용이 다른 경로를 통해 보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확인을 거부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비보도 조건부 취재는 사전이든 사후든 뉴스원과 취재 기자 사이에 명확한 합의가 이뤄져야 성립된다. 그런 합의가 없었는데도 뉴스원이 발언 도중에, 또는 사후에 일방적으로 “이건 비보도입니다”라고 되뇐 것은 아닌지 따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뉴스원과 취재 내용을 모두 보도하지 않기로 약속하는 ‘전면적 비보도’는 취재 기자의 임무에 비춰, 결코 쉽게 동의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불가피하게 그런 약속을 했다 하더라도 그 내용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일단 보도되면 비보도 약속은 당연히 파기된다. 이건 전 세계 언론인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통하는 규칙이다.
이런 점에서 5명의 기자들은 부끄러워해야 하고, 또 책임을 져야 한다. 또한 스스로 보도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이인제 진영에 정보를 흘린 어느 ‘데스크’도 마찬가지다. 진실 추구야말로 저널리즘의 요체가 아닌가. 늦었지만 문제의 모임에 참석한 기자들은 진실을 밝히는 데 적극 나서기를 권고한다. 자신이 듣고 본대로 보도하면 되는 것이지 보도 내용에 관해 입을 맞출 필요는 없다.
▼저널리즘의 본연 잊지말자▼
끝으로 담론(말과 글)의 진짜 의미는 담론이 끝난 다음에 새록새록 솟아난다고 한다. 특히 정치적 커뮤니케이션의 경우, 그 담론의 의미를 한 번쯤은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정치인의 교언영색(巧言令色)에 농락 당하지 않는다. 국민 수준 이상의 정부를 가질 수 없고, 국민 수준 이상의 정치를 누릴 수 없다는 명제를 생각할 때 오늘날 혐오스러운 정치의 모습에는 필자를 포함한 우리 유권자의 책임도 적지 않다고 본다.
우리는 그동안 말재간 좋은 정치인들에게 얼마나 농락 당해 왔는가. 더 이상 이들이 일으키는 바람에 농락 당하는 바보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우리의 경제력은 세계 13위다. 경제 국력에 걸맞게 시민으로서, 유권자로서의 분별력도 갖추도록 노력하자.
이민웅 한양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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