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정권 보다 무서운 발상▼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1위를 달리는 노무현 고문의 언론 관련 발언과 관련된 논란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서글픈 생각도 든다. 동아일보 폐간, 신문사의 국유화 또는 사원 지주제(持株制) 같은 발언이 있었느니 없었느니 하는 것이 바로 언론의 위기를 말해주는 사태다. 그와 같은 발언이 정말로 있었다면 그야말로 쿠데타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본인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몇 차례 말을 바꾸면서 오히려 자신이 ‘수구언론’으로부터 압력을 받고 있다고 역으로 공세를 취하고 있으니 그 기민함에는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이 문제는 정치권의 논란에서 그칠 일이 아니고, 노 고문이 즐겨 쓰는 ‘수구언론’의 과잉 반응이라거나 상대방의 모략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일도 아니다. 그 말이 나왔다는 작년 8월이라는 시점과 발언이 있었던 정황을 놓고 볼 때 적어도 언론에 관련되는 화제가 있었음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노 고문도 “기자들에게도 한국은행 특융 같은 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으니 언론과 관련해 상당히 깊은 부분의 대화까지 있었음을 자인한 것이다. 신문의 사원지주제까지 거론했다는 것을 보면 노 고문 개인 차원이 아니라 어디선가 권력의 은밀한 일각에서 언론의 구조를 개편하는 문제를 깊이 연구하고 추진할 채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심증도 간다.
놀라운 것은 일제의 엄혹한 탄압 하에서도 20여년간 명맥을 이어왔고, 광복 이후 다시 살아나 오늘까지 한국의 대표적 언론기관으로 성장해 온 신문의 폐간 이야기가 여당의 중진 정치인과 기자들 사이에 오갔다는 사실이다. 민주화를 간판으로 삼고 스스로 국민의 정부임을 내세우는 현 정권이 무슨 의도로 언론에 압박을 가하고 있는가.
우리나라의 언론은 역사의 굴곡을 겪으면서 시련과 영욕이 교차하는 역정을 걸어왔다. 한국의 신문이 완벽하지 못한 것은 정치권이 완벽하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에 문제가 많다 하여 쿠데타로 바로잡겠다는 발상을 해서는 안되듯이, 언론에 시정할 부분이 있다 하여 권력이 이를 폐간시키겠다거나 정치권이 나서서 구조를 개편하겠다면 군사 독재와 무엇이 다른가.
신문사의 국유화라면 독재정권보다 더 무서운 발상이다. 노 고문은 문제된 내용을 조작이라고 부인했다가 자신이 언론에 피해를 보고 있는 것으로 역공을 취하기도 한다. 이른바 메이저 신문을 최후의 독재권력으로 규정하고 이를 상대로 싸우는 이미지를 심는 것이다.
신문이 정권과의 유착이나 단기간의 승부수로 순위가 정해질 수 없는 것임은 과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권력과 재벌로부터 많은 특혜를 받았던 신문 가운데 메이저의 반열에 끼지 못한 신문을 보면 알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근간이 되는 사회체제 하에서, 신문사간의 경쟁과 적자생존의 사회 경제적 여러 여건에 의해서 이루어진 순위이다. 신문이 지닌 역사적 배경과 신문의 논조를 바탕으로 하여 언론기업으로서 신문을 어떻게 경영했는가 등의 총화적인 실적에 따라,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도 하고 선두경쟁에서 탈락하는 경우도 있음은 한국 언론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과거발언´정직하게 밝혀야▼
언론기업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주인은 다름 아닌 국민이고, 독자다. 언론사에 추상같은 초강도의 세무조사를 실시하던 국세청장으로 “4·19 때 이기붕의 집에 불을 지르러 가는 심정”이라는 말로 ‘소신’을 피력하던 국세청장은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은 오늘 나라 밖에서 떠도는 신세가 되어 있다.
노무현 고문은 자신의 과거 발언문제를 정직한 자세로 밝히기를 바란다. 그것이 대통령 경선주자로서의 정도일 것이다.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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