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놀던 물’이 아니기 때문일까. ‘두 남자’는 9일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시사회장에서 소감을 짧게 밝히면서 가까웠던 여자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한 이방인들처럼 어색해 했다.
‘결혼…’은 소설가 이만교의 동명 베스트셀러가 원작. 연희(엄정화)와 준영(감우성), 두 남녀를 통해 사랑과 성(性), 결혼을 둘러싼 세태를 다뤘다. 경제적 조건 때문에 다른 남자와 결혼한 뒤에도 옛 연인과 ‘주말 동거’를 하는 ‘바쁜 여자’ 연희와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한 여자에게 묶이기 싫어 결혼을 거부하는 남자 준영이 주인공이다.
10일 기자가 만난 배우는 시인같고, 시인은 배우같다. 187㎝의 큰 키인 유하는 니컬러스 케이지를 닮았다는 평가에 어울리게 말 보다는 웃음과 침묵 등으로 능숙한 ‘표정 연기’를 자주 보여줬다. 서울대 미대 출신인 감우성은 외모에 걸맞는 깔끔한 말 솜씨를 자랑했다.
“나도 연희처럼 ‘바쁘게’ 살고 싶다.”(30대 여)
“나도 연희같은 여자를 만나고 싶다.”(30대 남)
시사회 반응을 전해듣고 감우성은 “내 주변에도 연희와 준영이처럼 살아가는 친구들이 여럿 있다”며 “둘의 사랑이 우리 사회의 주류는 아니지만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하는 “아무리 ‘고수(高手)’라도 결혼은 정말 다루기 어려운 ‘장르’”라며 “사람들에게 결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10년만에 찾아온 두 번째 연출 기회와 11년만의 영화 데뷔.
‘결혼…’에 매달린 두 남자의 각오는 대단하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일까. 유하는 곧 ‘시인’보다는 ‘감독’으로 익숙하게 불리게 될 것이라며 웃었다.
“92년 데뷔작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간다’ 이후 두 번째 영화 찍는 데 거의 10년이 걸렸습니다. 지난 시간 왜 망했나, ‘복기’ 많이 했습니다(웃음). 당분간 시 보다는 영화에 매달릴 겁니다. 또 재미있고 관객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예술은 시에서 충분히 했으니까….”
감우성은 “평생 기억으로 간직할 만한 영화를 기다렸고 실제 그런 영화를 찍었다”면서 “늦었지만 좋은 출발점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영화를 계기로 두 남자는 단단히 묶여 있었다.
유하는 “극중 준영이를 떠올리면서 처음부터 감우성의 얼굴을 생각했다”면서 “‘먹물’ ‘인텔리’, 그러면서도 밉지 않은 이미지 하면 감우성 아니냐”고 말했다.
이에 감우성의 하얀 얼굴이 더 하얗게 변했다.
“고정된 이미지로 남지 않기 위해 드라마에서 얼마나 절제했는데…. 어쨌든 배우 캐스팅 순위에 제가 가장 위에 있었다는 말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나를 좋아하고 믿고 있다’는 신뢰가 연기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정말 결혼은 ‘미친 짓’일까.
유하는 “한때 결혼 자체를 거부하기 보다 사랑하는 이들의 사랑을 오히려 식게 하는 우리 ‘결혼제도’가 싫어 결혼하지 않을 생각도 했다”며 “지금 와이프를 만나면서 결국 생활 속으로 들어왔다”고 밝혔다. 그는 3년전 꽤 늦게 결혼해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이에 비해 아직 미혼인 감우성은 “결혼은 내 인생에 남의 인생을 끌어당기는 일”이라며 “아직 결혼에 대해 가타부타 말할 만큼 연륜이 없다”며 한발 뒤로 물러섰다.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며 사는 게 가능할까?’(준영의 대사)
두 남자의 대답은 ‘처지’에 따라 조금 다르게 나왔다.
“그렇게 살 수 있다는 통계가 긍정적으로 나와 았습니다. 가능성이 있죠.”(감우성)
“음, 그렇고 살려고 노력해야죠.”(유하)
26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 가.
김갑식기자 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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