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창]엄정식/불신 부르는 공약

  • 입력 2002년 4월 12일 18시 35분


‘가능한 한 약속하지 말라. 그러나 약속을 했으면 목숨을 걸고 지켜라’는 말이 있다. 다소 과장된 점은 있지만 약속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사회가 점점 더 복잡해질수록 약속할 일은 그만큼 더 많아지고, 그것을 지키기는 더 어려워지고 있다. 농경사회와는 달리 산업사회나 정보화사회에서는 인간관계가 다양해지고 서로 협력해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약속도 많이 하기 마련이다. 동시에 그것을 지키기 어려운 경우도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게 될수록 약속이라는 현상의 중요성도 더욱 강조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선 집착 공수표 남발▼

프랑스의 실존 철학자인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간을 ‘약속하는 동물’로 규정한 적이 있다. 그것은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이성적 동물’을 좀 더 구체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오늘날 사람들의 언행을 자세히 살펴보면 인간이 과연 이성적 동물인지 의심스러운 경우가 적지 않다.

사람들은 별로 깊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으며 즉흥적으로 말할 뿐만 아니라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행태를 많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반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실험은 비록 특수한 경우이기는 하지만, 개에게도 심리적 갈등의 흔적을 추적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 주었다. 또한 알란 튜링은 인공적인 기계에도 사유의 기능이 가능함을 암시하고 있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근거로 이제 인간만이 이성적인 존재라는 것은 오늘날 점점 더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태여 ‘약속’이라는 현상에서 인간적인 특성을 찾으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다면 약속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약속에는 두 사람 이상의 당사자와 약속되는 내용이 있다. 가령 내가 한달 후에 빌린 돈을 갚겠다고 어떤 사람과 약속을 했으면 나와 그 사람, 그리고 돈을 갚겠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현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약속을 하는 순간과 약속이 지켜지는 순간 사이에는 한달이라는 시간 간격이 있다. 따라서 나는 지금의 그 사람과 약속을 하지만 한달 후의 그와 약속을 지키는 것이므로, 엄격히 말하자면 동일한 상태의 인물과 약속이 이루어진 것은 아닌 셈이 된다. 지금의 나와 한달 후의 나도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이라는 현상이 이루어지는 것은 두 사람이 한달 후에도 각기 동일한 인물로 남아 있을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분석해보면 약속이란 매우 복합적인 현상이다. 지금의 내가 어떤 사람과 약속을 하지만, 그것을 지키는 일은 지금의 내가 아니고 또 상대방도 지금의 그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동일한 인물로 유사한 상황 속에 남아있을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좀처럼 약속을 하지 말라는 충고는 이 가변적인 요소를 제대로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적으로 수없이 많은 약속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무모한 일이지만 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요즈음 선거철이라서 그런지 특별히 약속들을 많이 한다. 그 중에는 누가 보아도 무리라고 느끼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은 당선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된다. 그러나 처음부터 무리한 공약을 하면 당연히 그것을 지키기가 어려워지고 결국은 약속을 어기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런데 약속을 어기면 어떤 현상이 빚어지는가.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약속을 어기면 상대방은 물론이고 나 자신마저 저버리게 된다. 약속은 상대방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키기로 한 미래의 나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약속을 자주 어기는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불신을 받게 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불신하게 되며 이것이 거듭되면 결국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됨을 실감하게 된다.

▼자신을 배신하는 지도자는 싫다▼

성숙한 사회의 시민들은 약속을 쉽게 하지 않으며 함부로 어기지도 않는다. 더구나 그들은 남을 배신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배신하는 사람을 지도자로 두고 싶어하지 않는다. 성숙한 사회의 시민이라면 약속이라는 현상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며 인간만이 약속하는 존재임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로 약속은 성숙한 사회의 척도이며 그 시민의 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엄정식 서강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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