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원짜리 지폐로 1조원을 마련해 차에 실으려면 5t 트럭 몇 대가 필요할까?’
놀리지 마시길…. 답은 ‘25대’다. 1만원권을 가득 실은 트럭 25대가 줄을 선 모습을 상상해보면 1조원이 얼마나 큰돈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돈을 007가방에 넣는다면 가방 1만개가 필요하다. 차곡차곡 쌓으면 백두산(2744m)의 4배 높이다.
이런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것은 ‘조원’라는 단위에 너무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그 크기를 일깨우려는 의도다.
#간단한 산수 풀이.
3월 28일 무디스가 국가신용등급을 Baa2에서 A3로 2단계 올렸다. 이 소식에 재정경제부는 샴페인 파티를 하려다가 “너무 빨리 샴페인을 터뜨렸다는 지적을 또 듣고 싶으냐”는 기자들의 말에 부랴부랴 철회했다.
두 단계 올렸다는 A3는 외환위기 전(A1)과 비교하면 오히려 두 단계 낮은 것이다. 만약 무디스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시켰다면 우리는 1년에 대외 지불이자를 얼마씩 더 절감할 수 있을까?
국가신용등급이 한 단계 오르면 금리가 대략 0.35%포인트 떨어진다. 한국 기업들이 진 총 대외채무는 1200억달러 규모(작년 말 기준). 따라서 1200억달러×0.35%×2〓8억4천만달러다. 재경부는 이를 10억달러로 추정했다. 원화로 환산하면 1조1천억∼1조3천억원. 트럭 28∼33대 분량이다. 국가신용이란 이런 것이다.
#또 하나의 이야기.
지금 우리 정부는 122조원의 국가채무를 지고 있으며 국민연금 잠재채무와 공기업 채무까지 합치면 1000조원의 빚을 안고 있다. 금리 1%포인트 차이는 연간 10조원의 세금낭비를 가져온다. ‘트럭 계산법’에 따르면 무려 250대 분이다.
정부는 3월 28일 예보채 만기분 차환발행에 실패, 4700억여원을 현금으로 상환했다. ‘공적자금이 차환 조성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선례를 남긴 것으로 국가신용에 매우 불리한 요인이었지만 같은 날 이뤄진 신용등급 상향조정 덕분에 대충 묻혀 지나갔다.
차환발행에 실패한 것은 여야(與野)의 입씨름 때문이었다. ‘국익을 놓고 도박을 벌였다’는 비난을 피하기 힘든 상황. 다시 임시국회가 열려 13∼18일 상임위, 19일 본회의가 예정돼 있지만 아직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국회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행사를 하나 열 것을 제안한다. 여의도에 신용하락으로 빚어질 수 있는 세금손실만큼의 지폐를 실은 트럭을 배치해 국민적 압력을 넣자고. 그리고 앞으로 부실 금융기관에 공적자금을 지원할 때는 수십 대의 트럭에 지폐를 실어 중인환시(衆人環視)리에 인계하자고….
허승호기자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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