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나 산업화가 어느 정도 진전되면 제일 먼저 착수하는 것이 제철소 건설이고, 또 제철소 건설은 초기 투자비용이 막대하기 때문에 손해를 보면서도 증산을 해서 금융비용을 메우려 한다. 이 때문에 세계 시장에서 덤핑으로 생존해 가는 나라도 있고 각종 시장 교란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는 결국 오늘날 세계 철강대전의 발단이 된 것이다. 근 20년을 외국의 철강 수입규제에 단련된 우리의 철강업계나 정부는 지금까지 대응을 비교적 잘해와 우리 산업을 지켜왔다.
그러나 이제는 보다 근원적인 대응이 필요한 때가 온 것 같다. 전세계 조강(組鋼) 생산능력은 10억2300만t으로 실제 생산량에 비해 1억7600만t이 과잉상태다. 즉 17%의 생산설비가 항상 쉬고 있고 이 17%를 사줄 수 있는 새로운 수요산업이 등장할 가능성도 작다. 세계적인 구조조정만이 유일한 해답이고 그 구조조정을 지금까지의 구미 주도에서 한중일 3국 주도체제로 바꾸어 나가자는 것이다.
미국과 EU의 철강생산 능력이 전세계의 약 29%이고 한중일 3국의 생산능력은 약 31%다. 3국 업계간, 정부간엔 전략적 제휴와 국경을 넘는 구조조정 문제가 협의되어야 한다. 기술제휴도 하고 적절한 규모의 설비감축도 공동 노력하여 고부가가치 품목으로 왜곡된 세계시장구조를 재편하는 것이다. 특히 일본은 스스로 철강산업이 과보호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런저런 정치적 이유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 업체간에 원만한 공조체제가 이루어지지 못해 일본으로부터 철강제품을 계속 수입해오니 일본업계가 반사적 이익을 얻고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있다. 일본 철강업계의 노무비가 우리의 2배이고 생산성이나 기술수준이 우리보다 더 낫다고 볼 수 없는데도 연명할 수 있는 것이 세계시장구조의 왜곡성 때문이다. 중국도 낡은 생산설비를 교체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구조조정이 절실한 때다.
우리는 통계상으로는 수급 균형이 이루어지고 최근 수출가격도 상승기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수입규제로 인한 일시적 효과일 수도 있고 세계적인 공급과잉문제가 계속 남아 있는 한 언제고 다시 급락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도 하루 속히 업체들간의 설비감축과 기술 개발 및 생산성 향상을 위한 공조체제가 구축되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정부의 조정 역할이 긴요하다.
우리의 주력수출상품의 대부분이 세계적 공급과잉상태다. 문제가 생긴 후 그때그때 대증요법만 취하다가는 늘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통상문제도 산업 정책적 대응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특히 우리가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하는 주력수출산업분야에서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새로운 세계수급질서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자.
조환익 한국산업기술재단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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