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우리들은 축구를 보면서 선수보다는 감독의 무언가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의 대표팀을 보더라도 선수 개개인 보다는 마치 한국축구의 구세주처럼 표현하고 있는 히딩크감독의 일거수일투족에 모든 언론의 관심이나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지 않은가. 선수 그 개개인의 능력이나 분석보다는 모두들 감독이 된 것처럼 자신을 그 자리에 대입시켜 전술이나 선수선발에 대해 비판하고 비난하고 칭찬하고 공감하고 한다.
물론 단순히 이기고 지는 승부에만 관심을 가지는 스포츠뉴스식의 판단에서 벗어나서 4백수비가 어떻고 공격형 미들필드의 위치를 이용한 공격전술이 어떻고 하는 팬들을 보면 우리축구가 발전한 만큼 팬들의 시각도 발전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그것은 월드컵 4회연속 진출이 가져다 준 무척이나 커다란 축구문화적 발전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이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닌듯 싶다. 흔히 말하는 ‘보는 눈’만 높아져서, 우리는 완벽한 경기가 아니면 좀처럼 만족할 수 없게 되버렸다. 아는 만큼 불만만 많아졌다고나 할까..? 한국 축구팬들은 매경기 드라마틱하고 상대를 시종일관 압도하여 그림 같은 골로 승부를 내어버리는 이미 각본을 잘 짜놓은 드라마를 보고싶어 한다.
그래서 인지 유독 국가대표팀 경기가 끝나면 신문이고 게시판이고 그 불만의 목소리로 가득하다. 스포츠신문을 ‘찌라시’니 어저니 하고 말하면서도 그 불만의 목소리의 대부분의 내용은 스포츠신문의 기사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말이다.
또 그럴수록 ‘내가 감독이라면…’ 이라는 가정을 쓰면서 수비라인의 선수들이나 공격전술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한다.
그러나 한국 축구의 수준이 그저 아시아라는 지역적인 특성 때문에 월드컵 본선에 나간다는 조금 과장된 생각을 해보면 (실제로 필자는 전세계를 지역예선없이 일렬로 세워서 월드컵 32강을 뽑는다면 한국은 과거로부터는 물론이요 앞으로도 한참동안은 본선무대에 올라가기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많은 팬들의 수준 또한 역시 그것을 넘어가는 수준은 절대로 아니다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실제로 그렇다면 그런 팬들이 가정하는 ‘내가 만일 감독이라면…’ 이라는 가정 자체는 실제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너무나 빈약한 가정인 것은 아닐까 ?
아니 무지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무식한 소리가 아닐까..?
조금 더 심하게 말해보면 단순히 그저 보기 좋은 경기 모습 또는 스스로가 좋아하는 스타일에 팀의 성적이나 스타일이 맞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어린애의 투정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게시판을 통해 보면 단순 논리로 열혈 축구팬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의 시각으로 바라본 우리 축구의 실체를 살펴보자. 그들의 말에 의하면 한국축구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어 낸 것은 모두 승패에 집착하는 무능한 중.고등학교 축구감독 탓이며 본인이 조금 관심을 가지고 잇는 프로팀의 부진역시 감독이 원인이라는 시각이 공통적인 것 같아 보여 정말 안타까울 따름이다.
정말로 우리나라의 수많은 감독들은 흔히 우리가 말하는 그런 속물들이며 전부다 돌머리에 정치적인 인물들 뿐일까 ? 우리의 축구협회는 그렇게 무뇌아들만이 앉아 노닥거리는 쓸모없는 집단일까..?
축구를 잘 모른다고 항상 주장하는 필자가 절대적인 논리로 장담할 수 있는 것은 그 팀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감독’이라는 것과 팬의 입장에서 보여지는 그 팀의 모습이 감독이 원하는 그 팀의 모습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보다 그 대상을 좁혀 대표팀 감독으로 국한하여 보자.
프로 팀 감독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수선발에 대한 운용의 폭은 넓지만 함께 모여 전술적인 습득을 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그 부족한 시간동안 한 경기라도 팬들이나 언론에 불만족스러운 경기가 나왔다가는 언론의 집중적인 포화를 맞는 그 자리가 바로 대표팀 감독이다. 설령 월드컵에서 우승을 했더라도 한일전에서 오대영 대패를 하면 바로 그 자리를 물러나야 할 자리라는 것이 우리나라 대표팀 감독의 자리다.
몇 년전 필자의 회사에서는 부서대항 축구대회가 벌어진 적이 있다. 선수들의 수준이라야 그저 동네축구의 수준을 크게 못 벗어나는 수준이고 2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까지 고루 분포된 회사 사정상 전후반 20분씩 뛸 수 있는 선수선발조차 답답한 수준이었다. 경기에 우승을 한다고 병역면제나 엄청난 포상금을 받는 것도 아니며, 군대처럼 포상휴가가 있는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한 대기업의 가을 운동회 일뿐이었다.
유난히 축구이야기가 나오면 목소리가 커지던 필자였고 주변상황이 그러해서 억지춘향이식으로 감독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이게 막상 그 자리에 올라가 보니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물론 군대시절 축구를 안해본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공격과 수비도 진형을 갖추고 진형에 어울리게 선수선발도 해야했고 상대에 대해 분석하기 위해서 다른 팀 경기도 가서 상대전력분석도 하고 그랬다.
당시에는 선택한 방법은 두 명의 스토퍼와 두 명의 수비형 미들필더였다.
물론 필자도 당시 유행하던 적극적인 공격전술을 무척 좋아하고 어디서나 뻥축구식의 구식전술은 사라져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하나였다. 세련된 오프사이드 트랩을 이용한 수비라인을 구축하고 수비와 공격이 가능한 미들필더의 사이드백이 그 팀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그리고 미들필드와 수비라인이 극도로 좁혀진 협력 수비야 말로 최고의 전술이고 최상의 전술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입만 살아있는 어설픈 팬의 하나였다.
하지만 그런 지시를 했다고 해서 선수들이 잘 따라올 수 있었을까..?
오프사이드트랙을 이용한 압박수비를 해!…라는 지시만으로 발을 착착 맞춰나가며 미들필드와의 간격을 적절하게 유지해 나가며 세련된 축구를 구사할 수 있었을까 ?
결국 선택한 방법은 가장 익숙하고 가장 효과가 좋은 뻥차고 달리는 한국형 뻥축구를 구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다만 한가지 가장 신경을 썼던 것은 체력도 좋고 공을 차본 경험이 가장 많은 두 세사람을 수비형 미들필더의 자리에 가져다 놓았다는 것 뿐. 왜?
지지않는 경기를 위해서 말이다.
여하튼 결국 운이 좋아 3번의 경기를 무실점으로 막아낼 수 있었다.
‘동네축구’ 감독이라도 최고의 자리에 서보니 장기나 바둑의 훈수처럼 밖에서 볼 때는 그냥 간단하게 생각하면 될 듯 해보이던 일이 막상 현실로 다가와서, 실제 행동하려 할 때는 여간 신경쓰이고, 어려운일들이 아니었다. 또 밖에서는 고려하지 않아도 될 사항들이 너무나도 많았었고, 그저 지나가는 이야기로 하는 부서원들의 지시가 무시해 버리기에는 만만치 않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이상의 이야기는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동네축구 감독으로서의 필자의 잘난 척이다 하지만 그 단순한 동네축구 에서도 감독의 자리는 선수의 컨디션이나 체력적인 부분 ,전술적인 완성 그리고 언론(?)들에 대해서 까지 고려가 되는 말많은 자리가 바로 축구팀의 감독이라는 자리를 하고싶어서 이런 부끄러운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늘어놓아 보았다.
우리는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어보지도 못했다.
우리중의 대부분은 프로팀 감독도 아닐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걸고 어떤 축구팀을 끌어본 경험도 없다. 감독이라면 어떤 것을 고려해야 하는 지 무엇이 우선이지도 모르면서 그저 결과론적인 분석으로 앞서 나간 감독들에게 돌팔매 질을 하고 그들을 무능력한 사람으로 손가락질 하며 땅에다 파 묻어버렸다.
두 달전 골드컵에서 그렇게 비난하고 힐난하던 언론과 팬들이 (최근 튀니지전까지만 해도 그랬었다.) 터키와 핀랜드와의 경기를 보고 최근 히딩크감독이 언론에게 부드러운 제스츄어를 보이고 그네들이 원하고 갈망하는 뉴스거리 전술적인 모습이나 훈련성과 그리고 선수선발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들을 잔득 안겨다 주었더니 비난일변도의 언론이나 컬럼들이 일제히 칭찬일변도로 돌변했다. 좀 당황스럽기도 하다. 팬들 또한 그 언론의 부추김에 넘어가 불과 한 달전까지도 감독의 능력을 믿지 못하다가 한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역시 대단한 감독이라는 칭찬을 늘어놓고 있다. 한 달전에는 당장 갈아치워야 했던 감독이 한 달뒤에는 다시 우리축구의 구세주로 바뀌어 지는 것이다.
만일 월드컵이 코앞에 닥친 다음달 잉글랜드와 프랑스와의 평가전이 불만족스럽다면 그리고 월드컵에서 16강진출에 실패한다면 또 어떤 누명을 씌워 그를 찍어내려 할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앞서도 수 차례 주장했지만 감독만큼 그 팀에 대해서 애정을 가지고 관심을 가지고 많이 아는 사람은 없다. 어느 감독이든 자기 팀이 지기를 원하는 감독은 없을 것이며 적어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두 배, 세 배 아니 열 배 스무 배는 더 많은 축구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이미 차려진 밥상 위의 반찬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투정이 쉽다. 국이 짜다는 둥 밥이 설익었다는 둥 고기가 질기다는 등…심지어 젓가락이 너무 길다는 등 별별 투정을 다 할 수 있다. 허나 그 밥상을 차리기 위해서 메뉴를 정하고 재료를 고르고 다듬고 조리를 하면서 얼마나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을까 ? 그런 과정을 거쳐 한상 차려놓았는데 배부른 손님이 반찬투정이나 하고 앉아있으면 한대 확 쥐어 박아버리고 싶지 않을까..?
우리는 늘 그라운드 레벨보다 높은 관중석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축구를 바라보는 팬의 한 사람이다. 그 그라운드 레벨에서 앉아 본인생각처럼 잘 풀려나가지 않은 경기를 바라보는 감독의 치열한 고뇌에 대해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결국 축구는 선수가 그라운드에서 상대편 보다 더 많은 골을 넣어야 이기는 경기이다. 감독이 아무리 모든 것을 100% 완벽하게 해 놓았다 하더라도 선수들이 발이 얼어붙어 움직이지 못한다면 그 역시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우린 지난 4번의 월드컵에서 늘 우리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우리 팀에 대해서 불만을 가져왔다. 그리고 그 비난의 고스란히 감독의 전술부재 및 선수장악 실패 탓으로 돌려 매번 감독을 갈아치웠다. 이전의 좋은 칭찬은 모두 사라져버리고 오로지 맹 비난만 퍼부으면서 말이다.
그래도 우리는 자국 팀이 월드컵 본선무대에서 뛰는 것을 무려 20여년 동안 계속 보아 올 수 있는 행운아들 아닌가..?
그렇다면 이제는 감독을 마구잡이로 비난하기에 앞서 본인이 좋아하는 스타일과 감독이 원하는 스타일이 무엇이 차이가 나는지부터 알아보고 그 입장을 이해한 뒤에 그 감독이 되어 생각해 보고나서 돌을 던지던 계란을 던지던 해 보는 것은 어떨까..?감독이나 선수, 언론보다도 ‘더 수준있는 팬’들이 되기위해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조금은 긴 어떤 책에서 발췌한 훌륭한 글을 하나 덧붙임으로서 마무리 하고자 한다.
아래 글은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동물행동학자로서 우리에게는 <털없는 원숭이>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데스몬드 모리스(1928 ~ )가 쓴 축구 인간학중의 한 부분이다. 20 여 년전 <월간 축구>에 연재된 것인데 몇년전에 하이텔 축구동의 송기룡님이 조금 난해하고 우리 정서에 맞지 않은 일부 내용을 의역하거나 생략하여 게시한 글이다. 물론 이 글은 대표팀 감독이 아니고 클럽팀 감독이라는 관점으로 기술해 나아갔지만 필자가 위에서 어설픈 논리를 펴온 글보다는 100배쯤 훌륭한 글이고 더 많은 이해를 줄듯싶어 부끄러움없이 퍼다 올려본다.
제 목:「옮김」 축구 인간학(21) - 감독 자리
모든 축구팀들은 마술을 부리고 신비한 주술을 쓰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감독이란 자리가 바로 그런 목적을 위해 필요한 존재다. 강렬한 개성을 발휘하고 여기에 의식적인 주술을 부림으로써, 자칫하면 냉소적이고 통제하기 어려운 프로 축구선수들을 팀을 위해 아낌없이 몸을 내던지는 광신자의 집단으로 바꾸는 것이 감독의 임무다. 기껏해야 일상 다반사나 다름없는 리그중의 한 경기일지라도 몸 바칠 값어치가 있는 성전인 것처럼 생각을 바꾸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감독은 축구 전문가인 동시에 최면술사이기도 하고, 정신과 의사이기도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필드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 허용되지 않으며, 경기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가 맡은 선수들을 마력의 포로로 해두지 않으면, 무시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간접적인 영향을 통해서라도 목적을 달성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감독으로서 능력의 차이가, 자신의 생각을 선수들에게 주입하는 능력에 있다면 훌륭한 감독은 강렬한 개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실제로 감독으로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지도자들에게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은 탈의실에서도, 텔레비젼의 화면을 통해서도, 대수롭지 않는 말 한마디에서도, 보는 사람의 주의를 끌고 놓치지 않는 매력과 능력에 있다. 불가사의한 것은 대부분의 감독들이 그런 능력을 갖기 위해 특별한 교육이나 훈련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느 스포츠 평론가가 말했듯이 "축구 감독이란 직업은 사람을 제대로 다루기 위한 교육을 미리 받고 하는 일이 아니다. 인사 관리에 대해서도, 연설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기업가로서의 바람직한 자세에 대해서도 훈련 따위는 전혀 받지 않고 있다. 스스로 몸에 익혀 자기 것으로 만들 뿐이다." 그러나 대감독들은 직관적 통찰력과 타고난 재주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사회 명사로서의 지위도 유지하고, 정치가 못지않게 인터뷰 요청을 받기도 하며, 그가 말한 한마디 한마디는 어록이 되어 인용되는 것이다. 감독으로서의 성공이란, 어찌보면 선수 시절 했던 민첩한 볼처리를 이제는 재치있는 말솜씨로 바꾸는 기능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일찍이 선수 시절에는 페인팅이나 트릭을 통해 상대 선수 선수를 빼돌려야 했다. 이것이 나중에 감독이 되었을 때 특별한 종류의 정신 작용의 발달을 촉진하는 것이 아닐까. 기민하게 근육을 조종하는 필드에서의 기술이, 선수들과 축구 관계자들을 다루는 화술의 기교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런 것에 의해 대화에 임기응변 능력이 생기게 되고, 기존의 관념에 구애 받지 않는 참신한 생각과 작전이 나오는 것이다. 어려운 질문을 교묘하게 피하고, 핵심을 찌르는 비판을 자기에 유리하게 해석하고, 모욕의 화살을 잘 피하는 것도 감독의 능력이다. 선수 스카웃은 물론,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팀 홍보에서도 유능함을 발휘해야 하고, 귀찮은 기자회견이라도 싫은 내색하지 않고 무난하게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1980년 시즌에 잉글랜드 1부에서 4부 리그까지 92개 클럽의 감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보았는데, 92명의 감독 중 88명이 프로 축구 선수 출신이었으며, 나머지 4명만이 아마추어 선수 출신이었다. 예전에 유명한 감독들이 현역 시절에는 대부분 수비수 출신들이어서, 한때는 뛰어난 감독은 수비수 중에서 나온다는 주장이 있었다. 그렇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서 말한 88명의 프로 선수 출신 감독들의 선수 시절 포지션을 조사해 보니, 포워드가 27명, 미드필더가 32명, 수비수가 28명, 골키퍼가 1명이었다. 골키퍼 출신 감독이 매우 적다는 점을 제외하면 감독이 선수 시절 어느 포지션을 했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선수들의 모든 포지션에는 각기 독자적인 특징이 있으며, 모두 장래의 감독을 양성하는데 훌륭한 바탕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포워드에게는 민첩한 몸놀림과 빠른 머리 회전을 요구하며, 미드필더에게는 유연성과 풍부한 활동력을 요구한다. 그리고 수비수들에게는 굳은 의지와 끈기가 필요하다. 각기 포지션이 요구하는 이런 특성들을 나중에 관리자의 자질로 바꿀 수만 있다면, 선수 시절의 포지션이 어디라 하더라도 축구화를 벗을 때가 오면 뛰어난 감독이 될 자질은 충분한 것이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은퇴 후 처음에는 앞뒤 생각도 없이 무턱대고 지도자가 되어 팀으로 들어간다. 어제까지만 해도 젊은 선수들에 뒤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이었던 30대 베테랑 선수가, 오늘은 '보스'의 자리에 앉아서 자기가 10여년 이상이나 계속 들어왔던 말들을 젊은 선수들에게 말한다. 그러나 선수에서 감독으로의 급격한 변화에 불평을 말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감독이라는 직업은 은퇴 선수의 대부분이 동경하는 자리이며, 처음부터 불안을 느끼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저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할 뿐이지, 축구 세계에서 가장 불안정하고 위험한 이 감독이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생각이 미치지 않는 것이다.
잉글랜드를 기준으로 조사해 보았더니, 프로 축구팀의 감독이 한 클럽에서 재임하는 기간은 평균 3년도 안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개중에는 운이 좋아서 유명 클럽의 감독으로 신분 상승하며 옮기는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의 감독들은 성적이 좋지 못했다는 비난을 들으며 클럽 이사회의 해고 통보를 받고 떠나간다. 감독이 물러날 때 공식 기자 회견장에서 발표되는 성명문에는, 감독이 스스로 사표를 클럽(또는 협회)에 제출하고 원만히 퇴임이 결정된 것으로 발표된다. 그러나 일찍이 어느 감독이 슬픈 어조로 말한 것처럼 "아무리 그래도 스스로 사임하는 감독은 없다"고 봐야 한다. 축구 감독이라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모두가 매 시즌마다 떨쳐 버리지 못하는 불길한 예감이 여기에 있다.
감독이 팀의 불쌍한 희생양으로 선택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팀의 성적이 나쁘다고 해서, 혹은 팀이 하위 리그로 떨어졌다고 해서, 팀 전원을 해고할 수는 없다. 그런 팀을 몽땅 사줄 독지가도 없을 뿐더러, 클럽이나 축구협회로서도 성적 부진으로 괴로움을 받았다고 해서 선수 전원을 방출하고 진용을 완전히 일신해서 다음 경기에 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감독을 제외한 다른 팀 관계자들은 그래도 목숨이 안전한 편이다. 클럽의 이사들은 모두 상당수의 클럽 주식을 갖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며, 클럽의 주주총회에서 성적 부진과 재정 수입 부진으로 인해 주주들의 맹렬한 책임 추궁을 받더라도 몸을 피해 이사의 자리를 계속 유지할 수가 있다. 클럽의 사무국장 역시 팀의 성적이 나쁘더라도 코칭 스태프나 선수들에 관한 결정에는 관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안전을 보장 받는다. 남는 것은 결국 감독이라는 고독한 존재 뿐이다. 산 제물로서 부족(클럽, 협회)의 제단에 바쳐지는 것이다. 기우제를 몇번이나 지냈는데도 불구하고 대가뭄을 당한 부족의 주술사처럼 감독은 경멸의 대상이 될 뿐, 손톱만큼의 자비도 베풀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감독으로서는 억울할 수 밖에 없다. 때로는 이사회가 감독의 팀 운영에 간섭하기도 하고, 감독 자신은 동의하지 않았는데도 집행되는 조치도 있기 때문이다. 이사들의 분노를 달래고, 이사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감독은 여러가지 문제에서 자신의 생각을 굽히고 양보를 하기도 한다. 클럽 관계자들중에는 끊임없이 감독에게 압력을 가해서, 실력은 없지만 마음에 드는 선수를 출전시키도록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이사들을 비롯한 클럽 관계자들은 자기들이 때로 팀의 저조한 성적을 초래했다는 점에서는 짐짓 모른체 한다.
그것 뿐이 아니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 감독이 꼭 갖고 싶어하는 선수가 있어도, 이사들은 때로 클럽의 재정난을 이유로 입단 교섭조차 아예 허락하지 않으면서도, 감독을 자를 때면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 위로부터 강요되는 이런 종류의 고통과 더불어, 감독은 밑으로부터도 압력을 받는다. 팀 내에서 가장 우수한 선수 중에는 감독에게 비협조적인 선수, 나아가서는 반항하는 선수가 있는 경우도 많다. 팀에 반드시 필요한 선수라는 것을 이용하여, 제멋대로 행동하여 감독의 권위에 도전한다. 이것은 다른 선수들에게까지 영향을 주어 감독의 지휘권이 흔들리기도 한다.
어떤 감독은 이런 상황을 두고 "신임 감독의 성공 여부는 자기를 싫어하는 5명의 선수를, 아직 태도를 결정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나머지 6명의 선수와 분리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 적도 있다. 이 같은 내부 문제를 잘 처리하지 못한다면 클럽은 장기간에 걸쳐 주력 선수가 없다는 타격을 입기도 하고, 팀의 전력에 불균형이 생겨 연패의 쓰라림을 겪을지도 모른다.
감독이 해고를 두려워하여 변명을 해도 구제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클럽의 성적이 나빠 하위 리그로 전락하기 일보직전까지 떨어질 무렵에는, 감독에 대한 불신은 클럽 이사회 뿐 아니라 벌써 관중석까지 미친다.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홈 관중들은 감독을 향해서 "000 물러나라! 000 잘라라!" 하고 일제히 외친다. 응원단들도 감독을 희생양으로 고르고 산 제물로 바쳐서 부족의 불쾌한 기억을 끊으려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 불에 기름을 붓는 것처럼 달려는 것이 지방 신문의 기자들과 방송 해설자들이다. 이들은 감독의 실수를 하나하나 분석하여 과장해서 마구 써댄다.
이런 식으로 감독은 위로부터는 이사들에게, 아래로부터는 선수들에게, 주위로부터는 팬들이나 매스컴에게 위협당해 언제나 사면초가의 상태가 된다. 따라서 일시적으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 감독이라 하더라도, 감독 자신이나 가족들은 항상 불안감을 씻어 버리지 못한다. 현대 축구가 수비 중심의 축구, 거친 몸싸움의 축구가 되어버린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감독의 이런 일상적인 불안도 분명히 그 중의 하나다. 감독은 이기기 위해 열의를 불태우기보다는 지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어있다. 그 결과 축구는 필연적으로 모험성과 아기자기한 맛이 없어지게 되었다.
이런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내기란 매우 어려울 것 같다. 미력하나마 대안의 하나로 강력한 감독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부당한 해고에 대해서 조합원을 지키고, 조합원의 고용 안정성 확보에 노력했을 경우, 클럽 이사회는 하는 수없이 보조를 맞출지도 모른다. 그러나 팬들이 이것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관중들은 분노를 폭발시켜 당장 클럽에서 감독 생활을 계속 하는 것이 어렵게 될 것이다. 감독이 오명을 덮어쓰고 사임하게 되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코치들이나 은퇴 선수들이 웅성대면서 후임 감독 자리를 노린다. 위험도가 높은 자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공석이 된 감독 자리를 메꾸려는 사람은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축구 감독 자리가 항상 고통스러운 직업인 것만은 아니다. 스릴과 짜릿한 승리의 쾌감이 있으며, 그의 주술이 효과를 올리고 있는 한 그 보답도 고통만큼이나 크다. 필드에서 싸우고 있는 선수의 플레이에 가슴이 조마조마해지기도 하고,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를 외치기도 하고, 무제한의 권력을 갖고 선수를 꾸짖기도 하고, 달래기도 한다. 스스로 필드로 뛰어 나가서 내가 선수 시절에는 이렇게 멋있게 했었다고 관중들과 선수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충동을 필사적으로 억누른다. 팀이 리드하고 있을 경우, 경기 종료의 호루라기가 울리면서 참기 힘든 긴장으로부터 해방되는 순간을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리며, 손목 시계를 몇 번이고 본다.
그런 긴 욕구불만의 시간을 보내고 난 다음에, 승리를 거두면 말할 수 없는 생의 환희와 긍지를 느끼는 순간이 찾아온다. 선수 전원이 오로지 감독의 주술적 마력에 보답하여 우승컵을 거머쥐기라도 하는 날이면, 감독의 승리감은 선수보다도 더 크게 충족된다. 이때만은 기나긴 고뇌와 누르기 어려운 불안에 시달려 왔던 지난날까지도 갑자기 지고의 가치가 있었던 시간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축구 감독이기 때문에 맛볼 수 있는 진짜 인생의 매력과 환희, 성취감이, 기쁨으로 빛나는 감독의 얼굴에 분명히 나타난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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