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주식 족집게’ 는 ‘가치’ 좋아해

  • 입력 2002년 4월 15일 18시 05분


▽이해균 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 주식운용팀장:주식형 수익증권인 ‘템플턴그로스 주식1호’의 최근 1년 누적 수익률 115.27%을 달성한 주인공.

▽이채원 동원증권 상품운용팀장:2001년 4월부터 1년 동안 회사 돈 732억원을 주식에 투자해 778억원(수익률 106.28%)을 벌어준 엄청난 직장인.

▽박효진 신한증권 투자전략팀장:2001년 10월부터 15일 현재까지 은행주와 삼성전자 주식을 ‘바이 앤드 홀드’ 하라고 일관되게 주장하는 확신의 사나이.

최근 이름을 날리고 있는 주식시장 ‘족집게 3총사’의 프로필이다.

세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가치투자의 신봉자라는 점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투자전략은 한마디로 ‘내재가치가 우량한 종목을 값이 쌀 때 사서 오래 가지고 있다가 제값까지 오르면 팔라’는 것.

▽족집게의 개념이 바뀐다〓기업의 수익성과 투명성이 높아지면서 시작된 ‘자기자본이익률(ROE) 혁명’은 이처럼 ‘주식시장 족집게’의 개념도 바꾸고 있다.

그동안 한국 증시에는 가치투자가 뿌리내리지 못했다. 국내외 경제여건에 증시의 기복이 심했고 투명하지 못한 경영 및 회계관행 때문에 기업의 내재가치를 제대로 계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증시 상황과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주식을 사고 파는 ‘타이밍’과 과거의 주가 그래프 등을 중요시하는 이른바 ‘모멘텀 투자’를 외치는 전문가의 말이 더 먹혀들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이후 종합주가지수가 400에서 900으로 쉬지 않고 오르는 등 최근 증시는 과거의 패턴과 기록을 외면했다. 이에 따라 예전처럼 “석 달 올랐으니 두 달 내린다. 당분간 주식을 팔라”고 외쳤던 모멘텀 전문가들이 설득력을 잃는 대신 오로지 종목 발굴에 매달린 가치투자 전문가들이 큰 수익을 내며 시장의 전면에 부상하기 시작했다.

▽3총사의 비법〓우선 종합주가지수의 등락이나 대중의 인기를 끄는 테마 등 시장과 유행을 철저하게 무시한다. 시장이 폭락할 때도 내재가치가 우량하고 값이 싼 종목이 발견되면 과감하게 산다. 이해균 팀장은 “시장이 아니라 기업을 산다”고 말했다. 이채원 팀장은 본질가치(자산가치+수익가치)에 비해 가격이 절반인 종목에만 투자하는 원칙을 고수했다.

이들에게 있어서 투자리스크는 종합주가지수나 사놓은 종목의 주가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내재가치가 떨어지거나 내재가치를 잘못 계산하는 일이다.

내재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회사가 계속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지는 가장 핵심적인 지표가 된다.

이렇게 해서 이해균 팀장은 알짜기업으로 각광받고 있는 태평양 롯데칠성 신세계 등을 발굴했다. 벤처 바람을 탄 ‘정보기술(IT)주 거품’의 유혹도 물리쳤다. 덕분에 99년 2월에 발매된 템플턴그로스 주식1호의 누적 수익률은 15일 현재 113.19%를 유지하고 있다.

이채원 팀장도 한섬 농심 롯데칠성 대한재보험 태평양 한일시멘트 등을 사서 모두 두 배 이상의 이익을 남겼다.

가치투자가의 마지막 미덕은 기다리는 일. 이해균 팀장은 “한 번 종목을 사면 평균 2년 반동안 보유한다”고 말했다. 이채원 팀장도 “투기자가 아닌 투자자로서 건전한 결과를 얻기 위해 사고 기다리는 지루한 방식을 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효진 팀장도 증권사 스트래티지스트로는 거의 유일하게 특정 종목에 대한 ‘바이 앤드 홀드’ 전략을 굽히지 않았다. 그의 말을 듣고 지난해 10월 은행주를, 11월말 삼성전자 주식을 사서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는 현재 모두 100% 이상의 수익을 거뒀다.

박 팀장은 “사상 처음으로 ROE가 금리보다 높아졌고 실적이 뒷받침되는 1등 주식이 강세장을 내내 주도한다는 과거의 경험에 따라 소신을 세웠다”고 말했다.

▽시장의 반응과 우려〓이같은 가치투자는 최근 전문가들에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홍성국 대우증권 투자분석부장은 최근 고객들을 상대로 한 투자설명회에 나가면 “이익을 계속적으로 낼 수 있는 회사의 주식을 사서 자식 이름의 주식 통장에 넣은 뒤 당분간 통장 자체를 잊고 지내라”고 외치고 다닌다.

김영권 삼성증권 트레이딩팀장은 “단기투자나 타이밍 매매를 부추겨온 증시 전문가들 때문에 결과적으로 개인투자자가 손해보고 외국인 투자가의 배만 불렸다”며 “기업의 내재가치와 ROE를 기준으로 한 장기투자 문화가 하루빨리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우려하는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S증권의 한 애널리스트는 “대외 수출의존도가 높고 국제경제 등 외부의 변수에 민감한 경제구조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아 기업의 미래를 몇년 앞까지 미리 내다봐야 하는 가치투자가 말처럼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ROE 혁명’이라는 단어 자체가 과거 인기를 끌다가 사라져간 여느 ‘테마’의 하나일 수도 있다고 걱정하기도 한다.

이익을 자본총액으로 나눈 값으로 경영자가 ‘주주의 자본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있는지’를 나타낸다. ROE혁명이란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구조조정 덕분에 기업의 경영 및 회계 불투명성이 상당부분 해소되고 주주가치 경영이 확산되면서 ROE 등 투자지표가 주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상황을 가리키는 말.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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