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찰간부 도피' 누구 작품인가

  • 입력 2002년 4월 15일 18시 11분


어쩌면 이토록 닮았단 말인가. ‘최규선(崔圭先) 의혹’에 연루된 경찰청 특수수사과장 최성규(崔成奎) 총경의 해외도피는 대형 비리가 터질 때마다 등장하는 핵심 연루자 도피의 판박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의혹을 풀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이 번번이 법망을 피해 외국으로 달아나고 있으니 국가 조직 곳곳에 피신을 방조하는 ‘보이지 않는 세력’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최 총경의 도피는 ‘최규선 의혹’을 규명하는 수사의 한 가닥이 아니라 권력형 비리와 대형 비리에 연루된 주요 인사의 도피를 근절하는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최 총경은 출국하기 직전 최규선씨, 김희완(金熙完)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등과 대책회의를 한 것은 물론 일부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까지 방문했다고 한다. 청와대 하명수사를 주임무로 하고 있는 특수수사과를 이끌면서 권력층과 교분을 맺었을 최 총경이 다각도로 ‘협의’한 뒤 피신한 흔적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용호 게이트’나 ‘정현준 게이트’에 연루된 사람들처럼 ‘나부터 살고 보자’는 식의 단순도피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선 최 총경이 출국하기 전 청와대를 방문한 사실이 있는지, 방문했다면 누구를 만나 무슨 논의를 했는지를 청와대측이 밝혀야 한다. 최 총경은 하명수사 때문에 수시로 청와대를 방문한다는 두루뭉술한 해명으로는 부족하다. 잘못이 없다면 청와대는 더더구나 의혹 규명에 앞장서야 한다.

검찰과 경찰이 최 총경의 출국을 막지 못한 이유도 규명돼야 할 것이다. 검찰은 최씨 의혹에 연루된 20여명을 출국금지시켰으나 최 총경의 출국은 사실상 방치했다. 경찰도 특수수사과 요원 40여명을 동원해 최 총경의 행방을 추적했다고 밝혔으나 역시 ‘닭 쫓던 개’ 꼴이 되고 말았다. 검찰과 경찰 어딘가에 구멍이 뚫린 것은 아닌가.

최 총경 도피경위 조사는 ‘최규선 의혹’ 규명 의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