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중요한 기능은 정서적 안식처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겉모양만 가족인 경우가 많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 위안과 기쁨을 주기보다 스트레스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요즘 어머니들은 아이가 경쟁에서 부추키는 ‘감독관’같은 기능적 역할에 충실해져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손자가 외할머니가 벙어리라는 말을 엄마로부터 듣자마자 “잔소리는 안하겠네”라고 말하는 것도 이를 보여준다.
그런 뜻에서 묵묵히 희생을 감수하는 영화속의 외할머니는 ‘전통적 모성’을 상징한다. ‘친할머니’가 아닌 ‘외할머니’라는 점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 사회는 겉으로는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이나 그 내면은 모계 중심 사회다. 형식적인 관계는 부계 중심으로 맺어지나 정서적인 부분과 생활권은 모계쪽으로 기울어 있다(2001년, 가족학회 조사). 정서적으로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편한 정신적 쉼터인 셈이다.
한국 사회는 농경과 산업 사회, 그리고 정보화 사회가 동시에 섞여 있다. 영화에서 외할머니는 농경사회를, 도시로 간 딸은 산업 사회를, 혼자 전자오락기를 갖고 노는 외손자는 정보화 사회를 상징한다.
‘외할머니’(농경사회의 정서)는 현대인들이 앞만 보고 달리는 과정에서 잊고 살았던 것, 그리고 앞으로 회복할 수 없거나 곧 영원히 잃어버릴 것 같은 가치다.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것은 한국 사회가 이제는 뒤를 돌아보고 속도 조절을 해야할 단계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또 한가지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현대 가정에서 ‘조부모’의 역할이다. 문화인류학자인 마가렛 미드는 일찍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조부모가 양육자로 참여하는 것은 아이들 정서에 바람직한 풍속”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맞벌이 부부가 많고 엄마의 역할과 기능이 예전과 달라질 수 밖에 없는 현대 가정에서 부모 역할의 일부를 조부모가 나누는 ‘조부모의 부모 역할하기 (Grand-Parenting)’도 이 영화를 계기로 생각해 볼 만하다.
이동원 이화여대 교수(가족사회학)·한국가족학회장 wlee@mm.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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