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2부 민일영(閔日榮) 부장판사가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누구 못지않게 국악을 사랑하는 재판장으로서 실형 선고는 참으로 가슴아픈 일입니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새 사람이 돼 다시 한 번 우리나라 국악계를 발전시키십시오.”
이날 이씨에게 선고된 형량은 징역 1년6월의 실형. 4차례나 같은 전과가 있는 데다 집행유예 기간에 또 대마초에 손을 대 실형은 피할 수 없었다.
사건을 맡은 판사들은 판결 전날까지도 실형 여부를 놓고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중요한 월드컵 공연이 줄을 서 있다”며 ‘국익’을 내세워 선처를 거듭 호소했기 때문.
그러나 재판부는 눈앞에 닥친 월드컵 행사보다 이씨를 마약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회에 마약이 독버섯처럼 퍼져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문화계의 공로만을 이유로관용을 베풀 때는 지났다”고 못박았다.
이씨가 한 번이라도 실형을 선고받았더라면 진작 마약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내놓았다. “네 번이나 집행유예를 선고한 재판이 과연 옳았는지 돌이켜보게 된다”며 과거의 온정주의적 판결을 비판한 셈이다.
마약은 이미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번져 있다. 한 알만 삼키면 ‘욕망’을 성취할 수 있는 신종마약에 대한 접근이 쉬워지면서 범죄라는 인식조차 희박해지고 있다. 그러나 마약사범 처벌이나 치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아직 미약하다. 법원의 양형조차 엇갈린다.
이런 점에서 최근 서울지법 형사부 판사들의 간담회에서 마약사건 전담재판부 신설이 논의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일관된 기준과 적정한 처벌은 마약 퇴치의 중요한 열쇠다. 교정시설 내에 충분한 치료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정은 사회1부 lightee@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