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아침고요수목원' 꽃 향기에 취해 봄날이 간다

  • 입력 2002년 4월 16일 16시 29분


아침고요 원예수목원은 4월 말~5월 중순에 꽃이 활짝 핀다.
아침고요 원예수목원은 4월 말~5월 중순에 꽃이 활짝 핀다.

“수목원을 둘러보는 데는 1시간 정도 걸립니다. 말 그대로 ‘산책’만 하면요. 작정하고 빨리 돌면 30분도 채 안걸릴지도 모르겠네요. 대신 계곡물에 발도 담그지 말아야 하고, ‘시가 있는 산책로’에서 단 한편의 시도 읽지 말아야 하고, 잣나무 숲에서 숨 한 번 크게 들이쉬지도 말아야 하고, 그리고 넓은 잔디밭에는 절대 앉지 말아야 합니다.”

경기 가평군 축령산 기슭에 자리잡은 ‘아침고요 원예수목원’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이런 글이 눈에 띈다. 맞는 말이다. 자연을 그냥 ‘구경’하겠다고 찾아간다면 기대에 못미칠지도 모른다.

1996년 수목원을 만든 한상경 삼육대 원예학과 교수는 “아침고요를 찾는 사람들이 우리나라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마음껏 쉬면서 명상하는 시간을 갖고 돌아갔으면 하는 의도로 만들었다”고 한다. ‘아침고요’라는 이름은 인도 시인 타고르가 조선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예찬한 데서 빌려왔다고.

늦은 꽃샘추위가 찾아온 지난주 초. 비가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적잖은 관람객이 아침고요 수목원을 찾았다. 단체로 몰려와 왁자지껄 떠드는 50대 여성들의 모습이 마치 수학여행을 온 여고생들같다.

“이 꽃이 무슨 꽃인가.” “참 예쁘네.” “여기서 사진 한 장 찍고 가요.”

한편에선 반백의 실버들이 뒷짐을 지고 부지런히 발을 옮긴다. 한 할머니의 입에서 노랫가락이 흘러나온다. 아직 철이 일러 꽃이 다 피지도 않았는데 그나마 피어 있는 꽃을 보고 나무도 보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니 흥이 절로 나는가보다.

수목원은 10여개의 주제로 구분돼 있다. 정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고향집 정원’. 정겨운 초가집이 있고 화단에는 야생화가 피어 있다.

‘분재 정원’에는 소나무 향나무 단풍나무 등 한국 자생 수종의 분재들이 전시돼 있다. ‘시가 있는 산책로’를 지나면 ‘단풍정원’과 ‘하경정원’에 이른다. ‘에덴 계곡’이라는 이름이 붙은 냇물 건너 언덕쪽으로 50m가량 올라가면 ‘하경 전망대’가 있다. 수목원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수목원을 감싸고 있는 축령산의 자태도 감상할 수 있다.

초가집 양반대가집 등 전통 가옥 사이사이에 메발톱꽃 산괴불주머니 철쭉 복사나무 등을 심어놓은 ‘한국 정원’이 나타났다. 이곳에 가까이 가자 냇물쪽으로 재미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냇물을 따라 수 백개의 돌탑이 자리를 잡고 있다. 방문객들이 저마다의 염원을 담아 하나씩 둘씩 돌을 올려놓은 것이 어느새 장관을 연출하고 있는 것.‘아침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와”하는 함성이 들려온다. 단체로 야유회를 온 사람들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한데 어울려 놀이에 한창이다. 활짝 웃는 표정이 무척이나 밝다.

금낭화

‘아침 광장’을 가로질러 ‘침엽수 정원’ ‘선녀탕’ ‘야생화 정원’ ‘무궁화 동산’ ‘허브 정원’ 등을 둘러보면 수목원의 웬만한 곳은 다 보는 것. 수목원 관계자의 말처럼 우르르 몰려다니며 구경만 하는 사람들보다 벤치에, 원두막에, 또는 잔디밭에 앉아 한가로이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이 정말 제대로 이 곳을 즐기는 모습이다.

한 관계자는 “올해는 유난히 황사가 심해 봄의 정취를 즐길 시간이 더 짧아져버렸다”면서 “아침고요 수목원에 오면 섭섭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목원의 꽃들이 활짝 피는 시기는 4월 말∼5월 중순.

문을 여는 시간은 오전 9시. 문닫는 시간은 계절마다 조정이 되는데 ‘해지는 시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연중무휴로 운영된다.

입장 요금은 평일에는 어른 4000원, 고등학생 이하 3000원. 휴일 및 공휴일에는 어른만 1000원을 더 받는다. 30명 이상 단체는 평일에만 1인당 500원씩 할인해 준다. 국도에서 수목원까지 들어가는 길이 좁아 주말과 공휴일에는 대형버스의 출입이 금지된다. 4월 말∼5월 하순은 내방객이 가장 많을 때여서 평일에 방문해야 여유있게 둘러볼 수 있다.

서울에서 춘천 방향으로 경춘국도(46번 국도)를 따라 가다가 청평을 지나 청평 검문소에서 현리 방면(37번 국도)으로 좌회전. 7㎞ 정도 가면 ‘상면 초등학교’가 있고 초등학교 앞 신호등 왼편으로 ‘축령산 아침고요 수목원’이라는 이정표가 있다. 031-584-6703

가평〓금동근기자gold@donga.com

◆ 그곳에 가면…

서울을 벗어나 경춘국도를 접어들면 굽이굽이 펼쳐지는 한강의 아름다움에 넋이 나간다. 정신을 차리고 아침고요 원예수목원에 들어서면 서울근교에 이런 곳이 있었나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축령산 동남계곡의 아름다운 비경만으로도 눈이 즐거운데 갖가지 특색있는 정원은 우리나라 자연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야생화정원 허브정원 아이리스정원… 벌써부터 꽃과 향기가 그리워진다. 우리 꽃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일깨워 주는 야생화정원과 허브정원. 한국의 미가 물씬 풍기는 한국정원 정원나라 하경정원.

우리나라 정원은 극도의 조형미와 인공이 가미된 일본식 정원이나 기하학적이고 대칭적인 질서정연한 유럽식 정원과 다르다. 비원처럼 인공미를 느낄 수 없는, 건물 등 구조물까지도 자연과 어우러지는, 자연미를 강조한다. 에덴동산 시가 있는 산책로에 이르러서는 신앙심과 더불어 정신적 풍요로움까지 제시한다.

더구나 생명이 있어 항상 변화한다. 내일의 모습은 어떨까 가슴이 설렌다.

김성복 고려대 생명환경과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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