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15일 발생한 산불로 막대한 피해를 본 충남 예산군 광시면 신흥리 마을은 마치 한차례 전투기의 공습이 지나간 자리처럼 참혹했다.
이번 불로 가옥을 모두 태워버린 농민 권용주(權庸周·69)씨는 16일 오전 숯덩이로 변해버린 벼 50가마를 뒤적이며 “자식들한테 보내려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얼마 안있어 논갈이를 해야 할 일소 ‘누렁이’는 외양간에서 산채로 불에 타버렸다. 객지에 나가 있던 자녀들이 하나 둘 몰려들어 잔불을 정리하며 위로했지만 권씨의 한숨을 잠재우진 못했다.
권씨가 10㎞ 가량 떨어진 청양군 비봉면의 친구 칠순 잔치에 갔다가 산불을 발견한 것은 14일 오후 2시반경. 심상치 않다 싶어 곧바로 차를 몰아 집으로 향했지만 불은 강풍을 타고 이미 마을 앞산까지 번졌고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권씨의 집 등을 덮쳤다.
이번 화마(火魔)로 돼지 1000여마리 등을 잃어 5억원 상당의 피해를 본 이 마을 장석무씨(66)는 충격으로 잠시 정신을 잃어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주민 김기헌(金基憲·57)씨는 “비료 50포대와 여러 농민이 공동으로 구입한 양수기 등을 태워 당장 농사를 어떻게 지을지 모르겠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이번 불로 신흥리에서만 37가구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7가구가 집을 잃었고 돼지와 소 등 가축 1000여마리가 소사했다.
산불은 14일 오후 2시경 청양군 비봉면 중목리 야산에서 발생했지만 곧바로 예산 공주 등으로 번져 3개군 4개면 22개리를 휩쓸었다.
경찰은 등산객의 실화로 불이난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이번 불로 임야 1154㏊(소방서 추산)와 가옥 41채, 축사 15동, 가축 1200여마리가 탔으며 81명의 이재민과 49억3000만원의 재산피해가 났다.
예산〓지명훈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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