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장애인의 날’에 생각한다

  • 입력 2002년 4월 19일 18시 14분


지난달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장애인 노점상 최옥란씨(36)의 비극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뇌성마비 1급장애인이었던 최씨는 턱없이 모자라는 정부의 생계급여비 현실화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위헌소송까지 냈으나 끝내 좌절했다. 장애인의 최저생활조차 보장해주지 못하는 현실이 그를 죽음으로 내몬 셈이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데 얼마나 인색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장애인시설이 들어선다는 이유로 주민들이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입학과 취업에서 불이익을 받기 일쑤다. 입사시험에서 최고점수를 받은 장애인의 면점시험 기회를 박탈한 한 공기업의 횡포는 그 단적인 예다. 장애인 실업률이 전체 실업률의 7배가 넘고 임금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무엇보다 장애인들의 가장 절실하고 최소한의 요구인 이동권마저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한 장애인의 생명을 앗아간 전철역 리프트 추락사고는 드문 경우라고 해도 곳곳에 도로턱과 계단으로 가로막힌 거리는 장애인에게 지뢰밭이나 마찬가지다. 올해 특별전형으로 서울대에 입학한 한 장애인 학생의 절규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도서관 옆 계단에 난간이 없어 기어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균등한 배움의 기회를 주는 데 앞장서야 할 대학이 이 정도니 법이 규정하고 있는 ‘장애인의 사회 참여와 평등을 통한 사회 통합의 실현’은 허울좋은 말치레일 뿐이다.

해마다 ‘장애인의 날’이 되면 여기저기서 행사가 벌어진다. 그러나 장애인 문제의 진정한 해결은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150만 장애인을 우리와 똑같은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인식의 전환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장애인을 장애우(友)로 부르는 것도 그 하나다. 이런 운동을 앞장서서 이끄는 게 바로 정부가 할 일이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희생’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타인에게 마땅히 지켜야 할 ‘의무’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되새겨보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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