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규민]대통령의 자식사랑

  • 입력 2002년 4월 19일 18시 26분


‘부모가 돌아가면 산에다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속담이 있다. 자식을 향한 내리사랑을 강조한 말인데 필시 종족번식을 위한 후손보호 본능이 그런 마음을 낳은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맥락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세 아들이 각종 의혹을 양산하면서 등장했을 때 이렇게 된 상황을 손가락질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대통령의 가슴이 얼마나 아플까를 걱정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병원에 입원까지 하랴, 아무렴 대통령주치의라는 사람들이 위장장애가 그렇게 강한 소염진통제를 노인네한테 함부로 썼겠느냐며 자식 걱정에 잠 못 이루다 병까지 난 김 대통령을 동정했었다.

▼여, ´홍걸 문제´뒤집어씌우기▼

그래서 겨자씨만큼만 믿음이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는 성경구절처럼, 당사자들과 여당이 반성하고 사과하는 마음을 겨자씨만큼만이라도 갖고 있다면 이 문제를 마음속에 덮어두자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데 바로 글을 쓰는 오늘 아침까지 반성은커녕 황당하고 한심한 주장들을 토하는 여당의 모습을 접하면서 이건 안 되겠구나하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민주당이 4년여 여당을 하고도 투정과 투쟁으로 얼룩진 배냇병식 야당체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일에서조차 국민에 송구스럽다는 마음을 보이기는커녕 송곳니를 세우며 뒤집어씌우기 식으로 나서는 모습에 실망은 커진다. 그래서 필자는 이 문제에 관해 여당의 자세가 변하지 않는 한 기회 닿는 대로 아들을 한명씩 들어 민주당의 주장이 어떻게 잘못됐는지를 말하고자 한다.

그 첫 번째로 3남 홍걸씨에 대한 문제를, 이해를 돕기 위해 과거 여당이 야당총재를 공격할 때 거론했던 이슈들을 대입해 가면서 정리해 보기로 하자.

여당은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가 총재시절, 그가 살고 있던 ‘호화’빌라를 잡아내 공격함으로써 본전을 몇 배 튀길 만큼 재미를 본 적이 있다. 물론 이 후보측은 해명 과정에서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답지 못하게 처신한 점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강남의 같은 평수 빌라에 비하면 절반값이고 그것도 남의 집에 불과한데도 여당은 그 집에 사는 것을 특수층의 한량놀이쯤으로 몰아붙여 서민들의 가슴을 저미는 전법으로 이 총재 가족을 결국 그 집에서 떠나게 했다. 김 대통령의 사저와 비교해 보자는 말한마디 못하게 한 채.

이제 홍걸씨가 구입한 미국 로스앤젤레스 근교의 100만달러짜리 집을 보자. 캘리포니아주에서 이 만한 규모의 집을 갖고 있는 교민은 1000명 중에 한 명도 안될 것이다. 모르면 몰라도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교민들은 대개 월세를 얻어 살고, 집을 가져봐야 20만∼30만달러짜리가 고작이다. 그런데 학생신분의 대통령 아들이 왜 이렇게 크고 호화로운 집을 사서 귀족처럼 살아야 했을까. 그런 대통령이 속한 정당이 서민의 이름으로 야당총재를 살고 있던 ‘연립주택’에서 쫓아내는 것이 도덕적으로 합당한 일인가.

민주당은 이회창씨의 며느리가 원정출산으로 미국 가서 애를 낳아 이중국적을 갖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런 오해를 받을 만큼 세련되지 못했던 것은 이 후보측의 잘못이다. 참고로 미국에서 태어난 외국 아이들은 18세가 될 때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미국국적 취득여부를 선택하게 되어 있다. 아마도 여당이 불과 한두 달 뒤에 나이 40의 홍걸씨 자신이 미국시민이라고 기록한 공문서가 공개되리라는 것을 알았다면 이렇게 유치한 국적문제는 거론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제 여당은 우리나라 대통령의 아들이 미국시민인지, 아니면 부도덕하게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인지 확실하게 밝혀야 한다.

홍걸씨와 이신범 전 의원 간의 10만달러 거래를 보자.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외국에 사는 대통령 아들을 집요하게 캐고 폭로하고 그것을 미끼로 더러운 뒷거래를 했다고 주장한다(얘기가 빗나가지만 기왕 합의했으면 그 돈을 다 주지 뭐 치사하게 약속한 돈 떼어먹으려다가 일을 이 지경까지 만드냐). 민주당의 말을 듣고 있자면 홍걸씨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검소하게, 그리고 모범적으로 공부만 하던 학생이었는데 야당이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나쁜 길로 빠지게 한 듯한 느낌을 준다. 협박하고 돈 뜯은 게 잘못이니까 그 전에 약점잡힐 일 한 것은 모두 정당하다는 논리인가.

▼´약점 잡힐 일´은 정당한가▼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역시 돈의 출처다. 그가 100만달러짜리 집에서 한달에 800만원의 할부금을 갚으면서 6만5000달러짜리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닐 만큼 소득이 있는가 하는 문제다. 만일 그것이 집안에서 물려받은 돈이라면 대통령이 그 명세를 공개해야 하고, 그 돈이 뇌물로 받은 것이라면 법적으로 처벌받아야 하며, 스스로 재산을 형성한 것이라면 그 과정에서의 납세여부를 국세청이 확인해야 한다.

여당이 계속 이런 식이라면 김 대통령의 걱정은 날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이규민 논설위원 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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