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타]네덜란드 축구천재 요한 크루이프

  • 입력 2002년 4월 21일 18시 11분


세계축구계에 일대 변화를 준 네덜란드의 ‘토털 사커’ 하면 떠오르는 얼굴이 바로 ‘축구천재’ 요한 크루이프다.

절묘한 볼컨트롤, 정확한 슈팅, 날카로운 패스, 지칠 줄 모르는 체력. 그는 축구선수가 갖춰야 할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완벽한 선수였다. 1974년 서독월드컵때 ‘전원공격 전원수비’라는 새로운 포메이션으로 준우승의 돌풍을 일으킨 네덜란드의 ‘토털 사커’ 시스템은 바로 요한 크루이프가 있었기에 완성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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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크루이프는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천재였다. 아버지는 야채가게를 했고 어머니는 남의 빨래를 빨아주는 세탁부. 그에겐 축구만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돌파구였고 지독한 근성이 그의 타고난 소질을 개발하도록 만들었다.

그가 축구화를 신게 된 데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축구클럽 아약스 암스테르담에서 세탁부로 일하던 그의 어머니는 축구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아들의 남다른 재능을 일찍 발견했다. 어머니는 아약스팀 관계자들에게 아들을 맡아달라고 간청해 소년팀 입단을 성사시켰다. 이때 크루이프의 나이가 12세.

아약스와 인연을 맺은 크루이프는 체계적인 훈련을 받으면서 기량이 나날이 발전했고 17세때 아약스 암스테르담의 프로선수로 데뷔하면서 어릴적 꿈을 실현시켰다. 66년 19세의 어린 나이로 국가대표에 선발된 그는 헝가리와의 대표팀간 첫 경기에서 골을 터뜨리는 등 13년간 A매치 48경기에서 33골을 뽑아냈다. ‘토털 사커’를 구사하는 소속팀 아약스를 세차례나 유럽컵 정상으로 이끌었고 유럽 최우수선수도 세차례 수상.

◀요한 크루이프(왼쪽)가 1974년 재10회 서독월드컵 동독전에서 2-0으로 승리한 후 팀 동료 네스켄스의 목덜미를 만지며 기뻐하고 있다.

그의 진가가 발휘된 것은 바로 74년 서독월드컵. 크루이프가 공격과 수비를 총지휘한 네덜란드는 예선에서 아르헨티나를 4-0, 준결승전에서 세계최강 브라질을 2-0으로 완파해 세계축구팬을 경악시켰다. 크루이프는 홈팀 서독과의 결승전에서 자신이 유도한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는 등 눈부신 활약을 펼쳤으나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는 서독에 1-2로 패해 아쉬움을 남겼다.

스페인의 FC바르셀로나와 미국 프로축구에서도 선수생활을 한 크루이프는 84년 자신을 키워준 아약스 암스테르담의 선수겸 코치로 복귀했고 87년 팀을 유럽컵과 위너스컵대회 우승으로 이끈뒤 유니폼을 벗었다. 하지만 은퇴후 바르셀로나와 아약스의 감독을 맡는 등 지도자로서도 성공적인 변신을 했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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