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운동선수라 하더라도 폭음이 문제지, 맥주 한잔 정도야 괜찮치 않을까. 그런데 이 맥주 한잔 때문에 월드컵에서 큰 곤욕을 치른 선수가 있다. 러시아의 야신과 함께 역대 최고의 골키퍼로 꼽히는 영국의 고든 뱅크스가 바로 그다.
1970년 멕시코월드컵 8강전 잉글랜드-서독전. 잉글랜드는 라이벌 서독과의 경기를 앞두고 총력전을 다짐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경기 이틀전 맥주 한잔을 들이킨 뱅크스가 갑자기 복통을 일으켜 자리에 눕더니 일어나지 못한 것. 든든하게 문전을 지키던 최고의 골키퍼가 드러누웠으니 팀에 비상이 걸렸다.
그런데 감독을 비롯한 동료들이 걱정을 해준 덕분인지 뱅크스는 경기 전날 자리에서 일어나 가벼운 훈련을 하는 등 회복세를 보여 주변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듯 하더니 막상 경기 시작 두시간전 작전회의 때 또다시 쓰러졌다. 이 때문에 잉글랜드의 골문을 지킨 것은 후보 보네티. 그러나 뱅크스가 문을 지키는 것과 보네티가 지키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잉글랜드의 램지감독은 수비의 열세를 공격축구로 만회하려 했지만 3골이나 허용하는 바람에 2-3으로 무릎을 꿇었다. 4년전 잉글랜드월드컵 결승에서 서독을 4-2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는 등 67년간 공식경기에서 서독에게 단 한번도 패하지 않던 잉글랜드축구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후에 사람들은 이를 두고 ‘맥주 한잔으로 결정된 승부’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요즘 한국축구대표팀은 술에 관한한 어떨까. 거스 히딩크 감독은 훈련 시간외에는 선수들에게 큰 간섭을 하지 않고 술에 대해서도 자유를 주는 편. 그러나 대표선수들은생각이 다르다. “히딩크 감독의 훈련을 소화해내고 대표팀에서 살아남으려면 먹으라고 강요해도 맥주 한잔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권순일기자 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