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다. 시사회장에서 영화를 보는 내내, 사람들이 내 머릿속을 특수한 내시경 촬영으로 들여다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 내가 상상했던 인물과 상황이 소설로 출간되더니, 이제 마침내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다.
나로서는 우선 소설을 쓰면서 상상했던 것과 얼마나 닮았는지 혹은 다른지가 가장 궁금했는데, 영화는 대체로 원작을 충실히 살려내고 있었다.
소설을 읽은 관객은 영화보는 재미 외에 소설 읽던 느낌을 다시 떠올려보는 맛도 있을 것이다. ‘저런 대사가 있었지!’ ‘없던 장면인데?’ 하고 패를 맞춰보는 재미가 있을 법하다.
그래서 원작을 자세히 기억하는 사람은 줄거리를 알아 싱거운 면도 있겠으나, 읽지 않은 사람은 인물의 대화에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웃음은 그쪽에서 많이 생겨난다.
어쨌거나, 나로서는 관객들이 웃을 때마다 마치 내가 웃기는 것처럼 짜릿했다. 아니, 자기가 농담한 것에 자기가 먼저 웃는 기분으로 쉽게 영화에 빠져들었다.
시작 부분의 결혼식 장면에서 어떤 친척이 남자주인공 준영(감우성)에게 다가와 ‘교수님’이라 부르는 사소한 대목에서조차 웃음이 났다. (나 역시 시간강사인데, 친척들도 나를 쑥스럽게 ‘교수님’이라 부른다. 알다시피 강사와 교수라는 직분은 실상 천지차이다. 어느 설문조사에선 신랑감으로 교수는 4위였는데, 강사는 49위였다고 한다.)
준영의 직업이 신랑감으로 가장 인기없다는 그 시간 강사다. 때문에 그는 결혼을 두려워하고 연희(엄정화)는 돈 많은 의사를 배우자로 선택한다. 사랑이 아닌 현실적 조건을 선택하는 이런 스토리는 일면 통속적이다. 그런데 이들은 사랑도 포기하지 않는다.
연희는 맹랑하게도 의사와 결혼한 뒤에도 준영과 주말부부처럼 옥탑방을 얻어 계속 만난다. 두 가지 인생을 모두 살아보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부일처제도 아니고, 굳이 붙이자면 이부이처제라고나 할까. 그런 점에서 엄격히 말하자면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결혼을 부정하거나 비판하는 작품이 아니라 결혼제도를 뛰어넘으려는 욕망을 꿈꾸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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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는 아무런 죄의식없이 다만 “남들보다 좀더 바쁘게 살아가는 느낌이야”라고 말한다. 사과 먹을래, 귤 먹을래? 하고 물으면 그녀는 재밌게도 ‘사과랑 귤이랑!’하고 욕심대로 솔직히 대답하는 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연희와 준영의 불온하고 당돌한 만남을, 영화는 차분하게 이끌어간다. 카메라는 이들의 비틀린 관계를 불륜이라기보다 아주 정상적인 만남인 것처럼 긴장을 늦추지 않고 밀고 나간다.
자기 욕망에 솔직한 연희의 당찬 이중성이 영화의 앞부분을 이끈다면, 준영의 씁쓸한 자의식이 후반을 관류한다. 엄정화와 감우성은 절제된 대사와 표정 중심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화제가 된 베드신도 문맥에 알맞은 만큼만 야하기 때문에 전혀 문제삼을 바 없었다.
영화를 보고 나올 즈음에는, 새삼 연희의 대사가 생각나 웃었다. 나도 이참에 인사말을 바꿔보면 어떨까. ‘잘 지내’가 아니라 ‘야, 남들보다 좀 바쁘게 살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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