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무리 매끈하게 잘 빠진 몸매에 날카로운 부리를 갖고 있어도 정작 먹이를 제대로 낚아채지 못한다면 매로서는 ‘0점’일 것이다. 반대로 체구가 왜소하고 볼 품 없어도 사냥감을 놓치는 법이 없다면 매 가운데 으뜸으로 자리잡는 게 아닐까. 역대 최고의 골잡이로 평가되는 독일의 게르트 뮐러(57)가 바로 그랬다.
뮐러는 1m75, 77㎏의 신체조건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사이즈다. 게다가 몸 전체가 뭉툭한 느낌을 주는 데다 다리가 유달리 짧다. 굳이 축구가 풋볼(football)이라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다리로 먹고사는 경기에서 뮐러는 치명적인 핸디캡을 안고 있는 셈. 남들이 두발 뛸 때 세 발을 뛰어야 한다면 그만큼 체력 부담도 심하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유달리 날쌔거나 유연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뮐러는 이런 약점을 극복하고 역대 월드컵에서 통산 최다 득점자로 아직도 남아 있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했던 차범근 전 국가대표감독은 “뮐러는 머리와 발 뿐 아니라 온 몸을 이용해 골을 터뜨릴 수 있는 득점 기계”라고 칭송한다.
그럼 뮐러만이 지닌 힘은 무엇이었을까. 평범한 체구에 개인기도 덜 가다듬은 듯 보였지만 타고난 골 감각만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었다. 경기장을 어슬렁거리다가도 한번 잡은 득점 기회는 좀처럼 놓치지 않을 만큼 위치선정과 골 결정력이 탁월했다. 승부 근성도 강해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다. 그래서 현역시절 그에게 붙은 별명이 ‘폭격기(Der Bomber)’.요즘 표현을 따르자면 뮐러야말로 ‘원조 킬러’였던 셈이다.
1974년 서독월드컵에서 우승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게르트 뮐러(오른쪽)가 월드컵 트로피를 높이 든채 볼프강 오베라트와 함께 환호하는 팬에게 답례하고 있다.게티이미지본사특약
유명스타가 그러하듯 뮐러 역시 불우한 시절이 있었다. 2차대전이 끝난 1945년 11월 패전의 멍에를 뒤집어 쓴 서독에서 태어난 뮐러는 어려운 가정 환경 탓에 용접공으로 일하며 가사를 돌봐야 했다. 가난 속에서도 축구공만 차면 새로운 힘을 얻었던 그는 18세의 나이로 고향 클럽 노르드링겐에 입단, 31경기에서 46골을 터뜨리며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용접봉과 씨름하던 소년에게는 전국 각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밀려들었고 1965년 바이에르 뮌헨에 입단, 루키 시즌부터 눈부신 활약으로 이듬해 팀을 분데스리가 1부리그로 끌어올렸다.
1966년 대표팀에 뽑힌 뮐러는 1970년 멕시코월드컵에서 마침내 전 세계를 호령했다. 불가리아와 페루전에서 연속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10골을 터뜨려 득점왕에 올랐고 서독은 4강에 진출했다. 1974년 홈에서 열린 서독월드컵에서도 뮐러의 발을 한껏 빛을 발했다. 특히 네덜란드와의 결승에서는 1-1 상황에서 전반 43분 천금같은 결승골을 작렬시켜 팀에 두 번째 월드컵을 안겼다.
월드컵 2개 대회에 나서 14골이나 장식한 뮐러는 A매치 62개 대회에서 68골을 터뜨리며 위력을 떨쳤다. 또 분데스리가에서 7차례나 득점왕에 등극하며 소속팀 바이에르 뮌헨을 4차례 리그 챔피언으로 견인하기도 했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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