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과 사람]<19>美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 원시림

  • 입력 2002년 4월 26일 18시 16분


끝없는 숲의 바다
끝없는 숲의 바다
《사람이 처한 환경에 따라 적응하듯 식물은 강수량 온도 등 기후 조건에 따라 독특한 ‘무리’를 지으며 변화를 거듭한다. 특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지(裸地)→지의류→초원→관목→밀림’ 등의 단계를 거치는 천이(遷移) 과정을 밟는다. 미국 하와이주(州) 빅 아일랜드의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은 지구상에서 천이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곳 중 하나다. 특히 화산 폭발 이후 초원에서 숲이 되기까지 적게는 수천년, 많게는 수만년의 자연을 압축한 아주 특별한 ‘생태 학습장’이다. 1980년엔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제생물권보호구역, 87년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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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주도인 오아후섬의 호놀룰루에서 비행기로 40∼60분 거리인 빅 아일랜드섬의 힐로 시(市).

이 도시에서 1시간 거리인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을 가기 위해 10분 정도 차를 몰면 이내 울창한 원시림이 나타난다. 정말 손가락 하나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이는 빽백한 숲이다.

하와이 화산국립공원은 생태학적으로 하루도 쉬지 않고 비가 쏟아지면서 일조량은 충분한 상태에서 최소한 천년이 걸려야 만들어지는 밀림을 보유하고 있다.

“국립공원을 만든 목적은 아름다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것입니다. 특히 활화산과 희귀동식물, 다양한 식생(植生)의 변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을 훼손하지 않고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 우리의 첫째 사명입니다.”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의 관리와 운영을 맡고 있는 더글라스 렌츠(45). 그는 어떤 경우에도 공원을 구경하려는 관광객의 욕구가 자연자원의 보존보다 우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렌츠씨는 이런 신념에따라 7년전 부임한 이후 음식점 스키장 등 자연을 파괴할 수 있는 시설에 대한 허가를 한 건도 내주지 않았다.

다만 자연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 걷기대회, 달리기대회 등을 예외적으로 몇 차례 허용했을 뿐이다.

“매년 7월 공원에서 열리는 ‘킬라우에아 화산 야생 달리기 대회’도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고 그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위한 행사의 하나입니다.”

렌츠씨 등 직원 91명은 지구상에 몇 안되는 이 생태계의 보고를 ‘사수’하기 위해 스스로 희생을 감수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3개월 전 멸종위기에 처한 하와이 토종 거위가 등산로 근처에 새끼를 낳았을 때의 일.

자연을 숨쉬며‥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화산이 활동중인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의 한쪽에서는 용암이 분출하고 있지만 또다른 한쪽에선 열대우림 속에서 산림욕을 즐길 수 있다. 원주민과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원시림 산책로에서 산책을 하고 있다.

공원측은 거위의 출산 직후 이 일대를 통과하는 등산로 등 접근로를 모두 폐쇄하고 관광객은 물론 직원들의 접근까지 차단했다.

이 때문에 이 일대 샘물에서 물을 구했던 직원들은 또다른 취수원을 찾아 헤매야 했지만 불만을 표출하는 직원은 한 명도 없었다.

국립공원 관광안내소 여직원 헬레나(35)는 “하와이에서 멸종 위기에 처한 생물의 종 숫자가 미국 본토 전체의 멸종위기 생물의 종을 다 합친 것보다 많다는 사실을 안다면 당연한 일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1983년 1월 폭발 이후 아직까지 용암이 흐르는 ‘킬라우에아 화산’ 분화구 주변을 따라 만든 18㎞의 원형 도로 ‘크레이터 림 드라이브’에서 갈라지는 산책로의 곳곳이 끊어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연간 200만명에 달하는 관광객을 만일에 있을지 모르는 화산 폭발의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서도 산책로가 봉쇄되지만 대부분은 동식물 보호나 자연경관의 훼손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다. 특이한 것은 울타리나 담장 등을 만들어 접근을 통제하지 않고 아예 길 자체를 없애는 근본적인 예방을 한다는 점이다.

‘1600년 전 하와이에서 인간이 활동한 이후 열대우림이 매일 1에이커(약 4047㎡)씩 파괴돼 왔습니다. 당신은 얼마나 더 많은 새 곤충 거미 달팽이 등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싶습니까?’

공원의 울창한 열대우림 속에서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산책로 입구의 게시판에 적힌 글이다.

렌츠씨는 “폴리네시안들과 함께 들어온 돼지 닭 개 염소 등 가축과 고구마 코코넛 사탕수수 타로 등 식물에 의해서 이 섬의 토종 식물이나 동물이 수없이 멸종됐다”고 말했다.

공원에 소속된 생물학자 4명은 하와이 토종 동식물을 지키고 외부에서 유입된 식물을 제거하기 위해 매달 회의를 열어 ‘특별생태보호구역(SEA)’을 지정한다. 또 자체적으로 ‘묘포장’을 운영해 하와이 토종 묘목을 길러낸다.

“우리는 지금 무원칙하게 자연을 마구 훼손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입니다. 좀 더 현명하게 자연을 활용했다면 인간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고 토종 동식물을 부활하기 위해 수많은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됐을 것입니다.” 묘포장에서 일하는 생물학자 피터 그린(37)의 얘기다.

하와이 화산국립공원〓이호갑기자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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