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이번 경선과정에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친위대’라 할 수 있는 동교동계 구파의 퇴조가 확인됨에 따라 민주당의 ‘탈(脫) DJ’가 자연스럽게 이뤄진 측면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당 대표를 노렸던 한광옥(韓光玉) 전 대표가 4위에 그친 것이나, 구주류의 핵심이었던 김옥두(金玉斗) 의원이 최고위원 경선에서 탈락한 것은 동교동계의 쇠락의 증거로 당내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동교동계 좌장인 권노갑(權魯甲) 전 최고위원이 장기 외국 체류를 준비하면서 사실상 정치에서 손뗄 채비를 하고 있는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노 후보가 부닥치게 될 정치환경은 이전의 어떤 대선후보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상황이라는 점에서 불가측성이 커지고 있다.
올 1월 민주당이 당권-대권을 공식 분리함에 따라 후보는 선거대책위원회의 인사권과 예산권만을 갖고, 당 대표가 조직과 정책 자금의 전권을 행사하는 한국 정당사상 초유의 ‘당권-대권 동거 체제’ 실험의 한복판에 그가 서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사실상 ‘DJ 홀로 뛰는’ 양상으로 선거를 치렀던 1997년의 상황과 비교하면 상전벽해의 격변인 셈이다. 여기에다 노 후보는 한화갑(韓和甲) 대표를 중심으로 한 11명의 최고위원들과도 수직적 상하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 보완 협력의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
당내에서는 71년 대선 당시 신민당 후보였던 김대중 후보가 박정희(朴正熙) 후보에게 패했던 원인 중 하나가 당권을 장악하고 있던 유진산(柳珍山) 당수의 비협조 때문이었던 전례를 거울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대주주였던 김 대통령과의 관계설정부터가 그로서는 쉽지 않은 과제다. 김 대통령의 탈당문제에 대해 “대통령께서 적절히 판단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그의 26일 발언이 내심 탈당을 바라는 것처럼 비치자 청와대가 발끈하고 나선 것이 단적인 예다.
대통령의 아들들 문제 처리, 정계개편, 선거관리 등 노 후보와 김 대통령 사이에 파열음이 빚어질 소지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있다. ‘DJ에 대한 의리’를 누누이 강조하고 있지만, 대선 승부를 영남 공략에 두어야 하는 노 후보로선 일정 시점에 불가피하게 ‘DJ와의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는 것도 딜레마다.
민주당 내에서는 후보 혼자 앞서 뛰는 ‘3김식 선거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만큼 당의 공조직이 후보를 에워싸고 지원하는 ‘제도적 보좌’가 급변하고 있는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더욱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런 이중구조는 자칫 ‘DJ 당의 인적구조’에 ‘노무현 간판’만을 덧씌운 것이란 인상만을 안겨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노 후보가 거듭 정계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데는 민주당의 정체성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밖으로 드러난 구조적 문제 못지 않게 직선적인 그의 성격과 스타일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한 민주당 의원이 “노 후보는 대중의 정서를 읽고 대중 앞에서 솔직한 면모를 보이지만 1 대 1 관계에서는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라고 평한 것처럼, 노 후보는 개인적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서투른 편이다. 당내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노 후보의 이같은 면모에서 기인한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