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이번 경선과정에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친위대’라 할 수 있는 동교동계 구파의 퇴조가 확인됨에 따라 민주당의 ‘탈(脫) DJ’가 자연스럽게 이뤄진 측면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당 대표를 노렸던 한광옥(韓光玉) 전 대표가 4위에 그친 것이나, 구 주류의 핵심이었던 김옥두(金玉斗) 의원이 최고위원 경선에서 탈락한 것은 동교동계의 쇠락 증거로 당내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노 후보가 부닥치게 될 정치환경은 이전의 어떤 대선 후보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상황이라는 점에서 불가측성이 커지고 있다.
올 1월 민주당이 당권-대권을 공식 분리함에 따라 후보는 선거대책위원회의 인사권과 예산권만 갖고, 당 대표가 조직과 정책 자금의 전권을 행사하는 한국 정당 사상 초유의 ‘당권-대권 동거 체제’란 실험의 한복판에 그가 서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사실상 ‘DJ 홀로 뛰는’ 양상으로 선거를 치렀던 97년의 상황과 비교하면 상전벽해의 격변인 셈이다. 여기에다 노 후보는 한화갑(韓和甲) 대표를 중심으로 한 11명의 최고위원과도 수직적 상하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 보완 협력의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
당내에서는 71년 대선 당시 신민당 김대중 후보가 박정희(朴正熙) 후보에게 패했던 원인 중 하나가 당권을 장악하고 있던 유진산(柳珍山) 당수의 비협조 때문이었던 전례를 거울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대주주였던 김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도 그로서는 쉽지 않은 과제다. 대통령의 아들들 문제 처리, 정계개편, 선거관리 등 노 후보와 김 대통령 사이에 파열음이 빚어질 소지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있다.
‘DJ에 대한 의리’를 누누이 강조하고 있지만, 영남 공략에 대선 승부를 걸어야 하는 노 후보로선 일정 시점이 되면 불가피하게 ‘DJ와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는 점도 딜레마다.
민주당 내에서는 후보 혼자 앞서 뛰는 ‘3김식 선거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만큼 당의 공조직이 후보를 에워싸고 지원하는 ‘제도적 보좌’가 대선에서 더욱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또 당이 노 후보의 우호세력인 동교동계 신주류와 쇄신연대를 주축으로 서서히 개편되고 있다는 사실도 노 후보에게는 청신호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당의 재편이 지체될 경우 자칫 ‘DJ 당의 인적구조’에 ‘노무현 간판’만을 덧씌운 것이란 인상만을 안겨줄 가능성이 있다. 노 후보가 정계개편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 것도 민주당의 변모를 촉진하기 위한 계산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권 내부적인 요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노 후보가 대선 경쟁력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노풍의 위력이 계속된다면 민주당은 자연스럽게 ‘노무현 당’으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나, 노풍이 약화될 조짐을 보인다면 민주당의 내홍은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6·13 지방선거가 그 첫 시험대가 될 것이다. 특히 노 후보의 연고지인 부산 울산 경남 지역에서의 승패에 따라 노 후보의 당 장악력은 현저히 달라질 것이다.
그가 공언한 대로 이곳 광역단체장 선거 중 한 곳에서라도 이긴다면 민주당의 변모는 물론 정계개편 추진까지도 탄력을 받을 것이나, 그렇지 못한다면 정치적으로 심대한 치명상을 입을 것으로 관측된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