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상가 임대기간 2년으로 편법 계약"

  • 입력 2002년 4월 30일 17시 40분


상가 주인들이 임대차 계약을 하는 조건으로 임차인들에게 ‘제소 전 화해’를 요구하는 일이 잦아 말썽을 빚고 있다.

제소 전 화해는 소(訴)를 제기하기 전 당사자가 이미 합의한 사항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확인을 받는 것. 상가와 관련한 제소 전 화해는 대부분 미래의 특정 시점에 임차인이 점포를 비워줄 것을 담고 있다. 제소 전 화해의 효력은 일반 판결과 동일하다.

서울 강남 A컨설팅 관계자는 “최근 체결된 상가 임대차 계약의 절반 이상은 제소 전 화해를 전제로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과거에는 대형 상가나 유흥업소에만 있던 관행이었지만 요즘은 개인이 갖고 있는 중소형 상가에도 제소 전 화해가 일반화하고 있어 임차인과 임대인간 마찰을 빚고 있다”고 전했다.

이를 반영하듯 서초동 B법률사무소 관계자는 “작년 이맘때만 해도 상가 임대차 계약과 관련한 제소 전 화해가 한 달에 6, 7건 정도였지만 올해 들어서는 10건 이상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제소 전 화해가 느는 이유는 내년에 시행될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을 앞두고 상가 주인들이 계약기간을 단축하려 하기 때문. 새 법에서는 임차인이 최장 5년까지 임대차 계약을 갱신할 수 있게 돼 있다. 이 기간 중 임대료 상승액은 시행령이 정하는 상한선을 넘을 수 없다.

상가 주인들은 이를 감안해 제소 전 화해를 통해 임대차 계약을 2년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임차인들은 2년 뒤 새로 임대차 계약을 하거나 상가를 비워줘야 하기 때문에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서 정한 임대차 기간이 사실상 무의미해지는 셈이다.

임차인은 상가를 구하기 위해 별 수 없이 제소 전 화해에 동의해야 하는 데다 여기에 드는 변호사 선임비용(150만원 안팎)까지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

법무법인 한중의 김조영 변호사는 “제소 전 화해는 임대차보호법의 근본 취지를 흔드는 편법”이라며 “법원에서 제소 전 화해의 부당성을 증명하려 해도 임대인의 ‘현실적인 강압’이 있었는지를 밝히기 힘들어 임차인이 고스란히 불이익을 감수한다”고 설명했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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