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대화 15개월만에 ‘물꼬’

  • 입력 2002년 4월 30일 18시 29분


지난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취임 이후 15개월째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북한과 미국의 관계가 대화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계기는 잭 프리처드 대북교섭담당대사의 북한 방문이다. 한미 양국 당국자들의 반응을 종합해볼 때 프리처드 대사의 방북이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북-미간 직접 대화의 움직임은 임동원(林東源) 대통령외교안보통일특보가 특사 자격으로 지난달 3일 북한을 방문, 북-미 대화를 중재한 데 따른 것이다. 임 특사는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프리처드 대사의 방북을 제안했고 김 위원장은 수락한다는 뜻을 표시했다. 하지만 이것이 미국의 수락으로 이어지는데 한달 가까운 시일이 걸렸다. 미국이 오래 뜸을 들인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북한의 태도에도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프리처드 대사의 방북을 수락했다고 임 특사가 발표한지 나흘 뒤인 지난달 11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아직은 미국과 대화를 재개할 상황이 아니다”고 밝혀 혼란스러운 신호를 보냈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대화의지를 확인하기 위해 공식경로를 통한 초청을 고집해왔고 뉴욕 채널을 통해 확인절차가 마무리됨에 따라 프리처드 대사의 방북을 결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대화에 앞서 샅바를 잡는 과정에서 상당한 시간이 걸린 점으로 보아 향후 북-미관계의 급진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1월28일 부시 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 축’ 3국 중 하나로 지목하면서 급랭했던 양자 관계에 비춰볼 때 중대한 진전이다.

외교소식통들은 프리처드 대사는 앞으로 북한 측과 핵사찰, 대량살상무기, 재래식군비 감축 등을 북-미 대화의 의제로 거론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의제들은 모두 장기간의 시간이 소요되는 실무협상 대상이다. 그러나 북한은 고위급 채널을 통한 ‘통큰’ 협상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의제는 고사하고 대화 방식을 둘러싼 줄다리기가 지루한 예고편처럼 계속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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