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송호근/주5일제, 정부 너무 나선다

  • 입력 2002년 5월 1일 18시 56분


‘주 5일 근무제’ 공방전이 계속되고 있다. 2000년 10월 노사정 합의안이 만들어진 이래 구체적 시행방안을 둘러싸고 일년 반이 넘도록 입씨름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급해진 정부는 중앙 공무원과 공공기관에 시범운영 수칙을 하달했다. 이렇게 해서라도 숨통을 틔워보자는 고육지책이다. 그러자 7월로 예정된 시행 대상 기관들의 발걸음이 빨라졌으나 여전히 묘책은 없다. 경영계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음을 강조하는 반면 노동계는 노사정위 합의대안이 오히려 ‘퇴행적 야합’임을 주장한다. 교착 상태는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구체적 대안까지 제시▼

사용자의 입장에서 주 5일제는 생산체제에 중대한 변화를 감수해야 하는 제도이며, 노동자의 관점에서는 ‘일과 여가’에 대한 패러다임적 전환을 꾀하는 계기이다. 2500시간에 이르는 연간 근로시간을 2000시간 정도로 단축하자는 것은 노동의존적 생산체제가 여전히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에서는 이른바 ‘혁명적 제안’이 아닐 수 없다. 그 문턱을 넘는 데까지 몇 년이 소요된 이유다.

이제 주 5일제 근무의 필요성과 시의성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비용 분담이다. 한국 노동자의 평균 시급(時給)을 7000원으로 잡으면 단축 근로시간으로 인한 연간 총비용이 350만원에 이르는데, 이것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근로시간 문제는 다시 각종 수당, 근로 형태, 근무 규칙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가족관계와 여가생활에 연쇄적 변화를 일으키는 ‘폭풍의 눈’이다.

이 시점에서 필자는 한국의 사회정책에 엿보이는 두 가지 특징을 지적하고 싶다. 역진성과 국가주도주의가 그것이다.

첫째, 역진성이란 빈곤노동자가 정책의 우선적 수혜대상에서 항상 제외되는 것을 뜻한다. 실업보험은 초기에 7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되었으며, 비정규직과 파트타임 노동자들은 지금까지도 각종 사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주 5일제가 가장 절실한 사람들은 비정규직과 여성노동자층, 영세사업장 근로자들이다. 단축된 근로시간을 활용해 부업거리라도 마련해야 빈곤의 공격을 견딜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사 ‘합의대안’은 영세 사업장의 제도 시행을 10년 뒤로 미루고, 생리휴가와 유급 주휴일을 무급화할 것을 권고했다. 단축된 4시간에 임금 할증률을 근로기준법의 절반인 25%로 책정한 것도 임금 삭감 불가를 고수하는 노동계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어렵사리 만들어진 이런 권고조항들은 지불능력이 있는 대기업과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대기업 노동자들에게는 결국 수용 가능하겠지만 문제는 영세기업이다. 노동 시간이 이윤의 주 원천인 중소기업에 있어 주 5일제는 사형선고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둘째, 국가주도주의 문제다. 주 5일제를 어떻게든 성사시켜 보려는 노사정위의 노력은 박수 받을 만하다.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노사정위의 무용론은 사실상 ‘기대의 인플레’가 낳은 것이다. 그러나 제 구실을 못한다는 세간의 비난과 달리 이 경우에는 노사정위가 ‘너무 나갔다’고 필자는 평가하고 싶다. 노사 자율에 맡긴다고 하면서도 세부사항에까지 기준을 제시해서 긁어 부스럼이 된 격이다. 시행 시기를 기업 규모와 부문별로 예시한다거나 연월차 통합과 탄력적 근로시간제 제안, 기타 근로 형태와 지급 규정에 관한 원칙 천명 등은 가이드라인이 아니라 일종의 새로운 규칙처럼 받아들여졌다. 노동계로부터 ‘주 5일제를 빙자한 노동개악’으로 낙인찍힌 것은 이 때문이다.

▼‘10년 유보’ 빈곤노동자엔 가혹▼

오죽했으면 구체적인 대안까지 만들었으랴마는 국가주도주의적 발상은 여기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대강의 윤곽과 방향을 설정하고 나머지 세부사항은 기업 현장의 노사 교섭에 맡겼어야 했다. 다만, 국가가 할 일은 그 합의대안이 명시했듯이, ‘중소기업이 근로시간 단축으로 감당해야 하는 기업비용을 상쇄할 수 있도록 세제, 금융지원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다. 또는, 근로시간 단축기금이나 촉진장려금을 조성해 중소기업과 영세기업이 동참할 수 있도록 짐을 덜어주는 것이다. 국가주도주의의 정도가 그것일진대, 아무런 비용을 치르지 않고 다만 정책 시행의 공적을 인정받으려는 태도로는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

원론적인 말이지만, 영세기업과 빈곤노동자에게 눈을 돌리면 의외로 손쉬운 타결책이 나올 것으로 믿는다. 사회정책의 우선적 수혜자는 언제나 대기업 부문의 기업주와 노동자였다는 것을 기억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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