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10대에게 인기가 높았던 조카멜은 청소년들의 흡연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사용 불가 판결을 받고 1996년 자취를 감춘다. 이후 카멜은 일련의 키치풍 광고를 통해 여전히 젊은층 끌어안기에 신경을 쏟는 한편 그 안에 숨은 독설을 통해 정부를 우회적으로 비꼬는 고단위 처방을 내린다.
저질 토크쇼인 제리 스프링어 쇼를 패러디한 광고 한 편을 보자. 한가운데 털 많은 짐승이 태연하게 앉아서 카멜을 피워 물고 있다. 그 뒤에는 그를 사랑하던 두 여자가 털 짐승을 차지하기 위해 머리 끄덩이를 잡아당기기 일보직전이고 건장한 두 남자가 그들을 뜯어 말리고 있다. 사회자는 화면을 응시하며 ‘난장판이군요!’ 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삼각 애정 관계의 폭로 현장에서 환호하고 있다. 뒤죽박죽 세상을 보여 주는 전형적인 제리 스프링어 쇼의 한 장면이다. 그 뒤죽박죽은 좌측 하단의 ‘발 큰 짐승(Bigfoot)의 괴이한 삼각관계’라는 카피에서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정말로 괴이한(bizarre) 세상 아닌가.
우측 상단에 있는, 담배 광고에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 경고문을 빗댄 우측 하단의 또 하나의 경고문은 ‘이 광고를 보는 사람이 고려해야 할 사항(Viewer Discretion Advised)’이란 제목 하에 TTB, BR, F와 같은 이니셜을 표기함으로써 마치 담배 속의 성분을 표시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전달한다.
TTB는 ‘Two Timing Bigfoot’, 즉 큰 발을 가진 털 짐승이 두 여자와 양다리를 걸치며 놀아났다는 것을 뜻한다. 발이 크다는 것은 미국에선 남자의 성기가 크다는 것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마치 한국에서 코가 큰 남자가 그것도 크다고 하는 것의 미국식 표현이다. BR은 ‘Big Ratings’다. 시청률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카멜의 인기가 높다는 것도 은연 중 나타낸다. F는 ‘Furballs’다. 이 역시 성적 의미가 농후한 표현이다. 표면적으론 배짱 부리고 앉아 있는 털 많은 짐승을 지칭하고 있지만 ‘ball’이 남자의 낭심이나 성교를 뜻하는 비속어라는 것은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처럼 성적 암시가 가득한 또 하나의 경고문은 무얼 뜻하는가? ‘담배는 당신의 건강에 치명적인 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라는 경고문으로 대표되는 담배회사에 가해지는 압박에 대한 유머있는 저항의 표현이다. 털북숭이 괴물은 미국의 각종 매스컴을 통해 묘사되고 있는 담배 산업의 이미지를 대변한다. 그러나 그 괴물은 느긋하게 앉아 뱃심 두둑하게 카멜을 즐기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멋진 괴물을 손에 넣기 위해 여자들이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제리 스프링어 쇼야말로 이 세상이 끝까지 갔음을 보여 주는 인간사 말종의 쓰레기 프로그램이다. 겉으로는 외도나 삼각관계의 오해를 푼다는 목적으로 오해 당사자들끼리의 만남을 주선한다는 명목을 내세우고 있지만, 속으론 그 만남을 통해 서로의 감정을 격앙시키고 마침내는 폭력을 부르게 하는, 그리고 그것을 통해 시청자들로 하여금 변태적 카타르시스를 만끽하게 하여 시청률을 높이려는 술수가 훤히 보이는 프로그램이다. 이 광고는 제리 스프링어 쇼를 소재로 삼아 미국 사회엔 이처럼 허섭 쓰레기 같은 것이 한둘이 아닌데도 왜 유독 담배산업만 희생양으로 몰아붙이며 정부가 인기몰이에 나서느냐는 소리없는 울분을 토로하고 있다. 제품에 관련된 메시지라곤 ‘강렬한 맛(Mighty Taste)’ 하나 뿐. 우리식 표현인 ‘따끔한 맛 좀 볼래!’라는 의미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닌지….
시가를 사용하여 자신의 인턴 사원을 성희롱했던 클린턴 정부에 의해 담배산업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후진국으로 하여금 담배소비를 늘리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미국과 후진국과 담배산업, 그 역시 괴이한 삼각관계임에 틀림없다.김 홍 탁
광고평론가·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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